[손바닥 다큐소설] 청계천 빈민의 성자(22): 개 사냥과 개 매질 지옥

입력 2020-06-01 09:48 수정 2020-06-01 09:59
註: 예수와 같은 헌신적 삶을 살고자 1970년대 서울 청계천 빈민들과 함께한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노 선생)와 빈민운동가 제정구 등이 겪은 ‘가난의 시대’. 그들의 삶을 통해 복음의 본질과 인류 보편적 가치 그리고 한국 교회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는 다큐 소설이다. 국민일보 홈페이지 ‘미션라이프’를 통해 연재물을 볼 수 있다.

2010년 11월 노 선생이 찍은 애완견 두 마리. 광고 모델로도 출연했다. 일본 야마나시 노 선생 집이다.


그 무렵 나와 가장 친한 친구는 개나 고양이였다. 외로운 소년에게 개나 고양이는 말벗과 위안이었다. 어머니가 언제 돌아오실지 묻기도 하고, 도쿄로 입양 간 동생의 안부도 물었다. 그러다 보니 더욱 정이 들었다.

나중엔 집 안의 개나 고양이만이 아니라 버려진 개, 고양이에게까지 정성을 쏟았다. 생선 내장을 주워와 먹이거나, 집 안에 있는 음식을 찾아 주기도 했다.

이러한 동물 사랑 습관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뱀이나 바퀴벌레와 같은 혐오 동물과 벌레에게도 정성을 쏟게 됐다. 사람과 달리 동물은 사랑을 쏟으면 절대 배신하거나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이런 자세는 1950년 도쿄에 있는 수축산대학(일본대 수의축산대학 전신)으로 진학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수의축산대학은 아주 경쟁률이 높은 명문이었다. 전쟁 중에는 마사(馬事) 관리가 필수적이었다. 말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전시 사관학교였던 셈이다. 따라서 수의축산대학은 품종 개량 또는 기마 관리 등을 다루는 병마(兵馬) 운용 중심으로 가르쳤다.

한데 내가 진학한 때는 패망 직후였다. 1945년 이전까지 활발하게 공급되던 말은 그 필요가 없게 됐다. 또 전쟁 직후라 실습에 필요한 동물 등도 절대 부족했다.

학생들은 실습용 유기견 등을 사냥해야 했다. 말이 사냥이지 훔쳐오는 게 일이었다. 수업 시간 전 우리는 동네를 배회하며 유기견을 찾았다. 그러다 정 없으면 훔쳐 오기도 했다.

어느 하루는 교수가 잡아 온 개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마취약이 없다. 이 개를 두들겨 패서 지치게 만들어라.”

학생들은 교수의 얘기에 개를 몽둥이로 후려쳤다. 끔찍한 일이었다. 그들은 아무런 감정이 없이 짖어대는 개에 매질하며 시시덕거렸다. 몸부림치는 개를 보는 일은 지옥이었다. 더는 쳐다볼 수가 없었다. 실습장을 뛰쳐나가 마구 토해야 했다.

‘도대체 인간은 왜 이렇게 잔인할까? 하나님은 사람에게나 동물에게나 같은 생명을 주셨는데 왜 공존하지 못하고 생명을 끊는 일을 다반사로 할까?’

이날의 충격은 내가 수의학 공부에 흥미를 잃어버리는 사건이 되고 말았다. <계속>

작가 전정희
저서로 ‘예수로 산 한국의 인물들’ ‘한국의 성읍교회’ ‘아름다운 교회길’(이상 홍성사), ‘아름다운 전원교회’(크리스토), ‘TV에 반하다’(그린비) 등이 있다. 공저로 ‘민족주의자의 죽음’(학민사), ‘일본의 힘 교육에서 나온다’(청한)가 있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