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홍콩내 기업에 보안법 찬성 압박
홍콩사태, 금융시장에 불확실성 지속시킬 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9일(현지시간) 중국의 홍콩내 국가보안법 강행 결정에 대한 보복조치로 홍콩에 대한 모든 특별대우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날 뉴욕 증시는 트럼프 발표에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S&P500과 나스닥 지수는 하락세를 보이다 기자회견 이후 오히려 반등하기 시작해 각각 0.48%, 1,29% 상승한 채 마감했다. 다우지수는 보합수준인 -0.07%를 기록했다.
이같은 증시의 반응은 트럼프가 기대하는 것만큼 특별대우 박탈의 효과가 크지는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홍콩 특별대우 폐지 조치는 관세와 무역, 금융 분야에서 이제부터는 홍콩에 대한 특혜를 없애고 중국내 상하이 선전 등과 같은 대우를 해주겠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자유 무역과 금융의 중심으로 통하던 홍콩의 위상 격하는 불가피해 보인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 캐나다 호주 등이 공동성명을 통해 중국의 국보법 강행에 같은 비판의 목소리를 낸 만큼 일련의 제재 미국과 보조를 맞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JP모건은 위안화의 큰 폭 절하 및 홍콩 거주자의 자금이탈 등이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은 그간 중국의 자금 조달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해 온 홍콩을 압박하면 중국에 충격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2010~2018년 중국 기업들이 해외에서 조달한 자금 중 홍콩 비중이 주식은 75%, 채권은 60%를 차지한다. 홍콩의 기업공개(IPO)를 통한 기업자금 조달액은 2018~2019년 세계 1위다.
<자료:국제금융센터, 닛케이>
하지만 관세 무역 금융 등 3개 분야 특별대우 폐지가 미국이 생각한 대로 당장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우선 홍콩에 대한 미국의 관세 우대가 폐지되더라도 타격은 상징적인 수준에 머물 전망이다. 홍콩의 대미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8%에 불과하다. 게다가 대미 수출액 3040억 홍콩달러(2019년 기준) 가운데 77%가 중국 본토에서 홍콩을 경유해 미국으로 향하는 재수출이어서 이미 미국이 무역전쟁 와중에 부과한 대중국 제재관세를 적용받고 있다. 미국 제재에도 불구하고 자유무역기구(WTO)나 국제통화기금(IMF) 등으로부터 부여받은 독립적인 관세지역의 지위까지 박탈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미국 입장에서 관세 우대 철폐로 인해 무관세 적용을 받아오면서 홍콩으로부터 누려왔던 최대 무역흑자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2018년 현재 2129억 홍콩달러 어치의 대홍콩 수출 가운데 1위 품목인 전자제품 분야가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홍콩에 아시아·태평양지역 본부를 둔 미국 기업이 1300개에 달하고 미국의 홍콩 직접투자 규모가 2018년 현재 825억달러(102조원) 가량으로 특별지위 박탈이 미국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1992년 이후 미국이 홍콩에 베풀어 온 특별지위가 단지 홍콩만의 혜택이 아니고 미국 기업을 비롯해 글로벌 기업들을 위한 우대조치였음을 의미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조치에 1차 미·중 무역협상에 대한 별도 조치를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이처럼 대홍콩 제재가 오히려 미국에 득보다는 실이 더 많을 수 있음을 감안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가 29일 미국의 홍콩 특별지위 박탈은 무모하고 독단적인 조치라고
비난하면서도 홍콩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한 것은 중국이 이미 미국 등의 조치가 한계를 보일 것을 예상하고 보안법 강행 계획을 치밀하게 준비해왔음을 시사한다.
중국의 홍콩 정책이 미국과 영국 등의 약점을 파고들며 물밑에서 용의주도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홍콩내 외국 기업이나 주요인사들에게 국가보안법에 찬성할 것을 강요하며 압박하고 있다.
4대 홍콩 행정관을 지낸 렁춘잉(梁振英)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은 페이스북에 “HSBC가 아직 국가보안법에 대한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면서 “(영국은행인) HSBC가 홍콩에서 독특한 특혜를 받고 있는 점을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된다”고 압박했다. 홍콩 정부는 HSBC에 뱅크오브 차이나, 스탠더드 차터스와 함께 은행권을 발행할 수 있는 특혜를 줘 왔다.
HSBC를 압박하는 것은 1997년 중국반환 이전부터 홍콩에 살고 있는 홍콩인 290만명에게 시민권을 주겠다고 발표한 영국 정부를 간접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스와이가(家)가 대주주인 커세이 퍼시픽 항공은 최근 조종사가 보안법 반대 시위를 벌인데 대해 중국의 항공당국이 발빠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이후 최고경영자(CEO)와 고위 임원을 해고하는 등 홍콩내 외국기업들은 이미 보안법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홍콩 최고 갑부인 리카싱 전 청쿵그룹 회장을 비롯 궈빙롄 선훙카이그룹 회장과 정자춘 신스제그룹 회장, 리자제 헝지부동산 회장 등 주요 기업인들도 국가보안법 제정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주요 인사들의 보안법 찬반 여부를 통해 줄세우기 정책이 진행되는 모양새다.
골드만삭스는 단기내에 홍콩을 둘러싼 미국의 중국과의 갈등이 전면전으로 격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이해득실을 계산하면서 행동보다는 레토릭 중심으로 전개될 소지가 있다고 전망했다. 즉, 미국의 대홍콩 정책 변화는 홍콩을 중국과 같이 취급하는 도매급 전환(wholesale shift)보다는 맞춤형(targeted) 변화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트럼프가 G7 회의에 한국 호주 인도 러시아를 초청한 것은 대중국 전선을 전방위로 확대하려는 것도 홍콩 압막만으론 한계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국제금융센터는 홍콩사태가 미칠 직접적인 경제적 영향은 제한적이더라도 불확실성 지속 및 시장심리 악화에 따른 간접적인 영향은 시간을 두고 증폭되어 나타날 소지가 있다고 전망했다. 따라서 코로나19 재발 가능성, 경기침체 지속에 이어 새로운 악재가 부상한 만큼 당분간 환율 등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질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