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만에 나타난 생모, 순직 소방관 딸의 유족 급여 타갔다

입력 2020-05-31 12:44 수정 2020-05-31 14:42
두 딸이 2∼5세때 이혼한 뒤 32년간 연락을 끊고 살았던 어머니가 소방관이었던 둘째 딸이 순직하자 갑자기 나타났다. 이 어머니가 숨진 딸의 유족 급여와 퇴직금 등을 받아가자 이에 분노한 소방관의 아버지와 언니가 생모에게 양육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사건은 지난해 1월 수도권 한 소방서에서 일하던 A씨(63)의 둘째 딸(당시 32세)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에서 비롯됐다.

그는 구조 과정에서 얻은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우울증을 앓다가 가족과 동료 곁을 떠났다. 의사 소견서에 따르면 소방공무원 생활 중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 충동 조절 어려움과 인지 기능 저하 등에 시달리던 그는 휴직 후 지속적인 치료에도 근무 시절 목격한 사고사 장면이 반복해 떠오르는 증상 등이 악화했다.

인사혁신처는 지난해 11월 공무원재해 보상심의위원회를 열고 아버지인 A씨가 청구한 순직 유족급여 지급을 의결했다.

문제가 불거진 건 이때부터다. 공무원연금공단은 이와 비슷한 시점에 어머니인 B씨(65)에게도 이러한 결정을 알렸다.

B씨는 본인 몫으로 나온 유족 급여와 둘째 딸 퇴직금의 일부를 합쳐 약 8000만원을 받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더불어 사망 때까지 매달 91만원의 유족 급여도 받게 됐다.

이를 알게 된 A씨는 지난 1월 B씨를 상대로 1억 8950만원의 양육비를 청구하는 가사소송을 전주지법 남원지원에 제기했다.

A씨는 1988년 이혼 이후 두 딸을 보러 오거나 양육비를 부담한 사실이 없고 둘째 딸의 장례식장에도 오지 않은 B씨가 유족 급여와 퇴직금을 나눠 받은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최근 논란이 된 가수 고(故) 구하라 씨 유산을 둘러싼 구씨 오빠와 친모 사이의 법적 다툼과 마찬가지로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는 상속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A씨는 B씨가 부모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며 이혼 시점을 기준으로 자녀 1명당 성년이 된 해까지 매달 50만원씩을 내라고 청구했다.

이에 B씨는 “아이들을 방치한 사실이 없고 전 남편이 접촉을 막아 딸들과 만날 수 없었다”는 취지의 답변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그는 딸들을 위해 수년 동안 청약통장에 매달 1만원씩 입금했다며 “두 딸에 대한 애정에는 변함이 없다”라고도 했다.

A씨 부녀를 대리하는 강신무 변호사는 31일 전화통화에서 “양육 의무를 전혀 하지 않은 부모가 자녀의 유산 상속 권한을 온전히 보장받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다”며 “현재 이를 제지할 법이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부녀가 매우 고통스러운 심정으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남원지원 가사1단독 심리로 재판과 조정이 진행 중이다. 선고는 이르면 6월 안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전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