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다큐소설] 청계천 빈민의 성자(21): 전시 배급체제 시작

입력 2020-05-29 09:35 수정 2020-05-29 15:13
註: 예수와 같은 헌신적 삶을 살고자 1970년대 서울 청계천 빈민들과 함께한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노 선생)와 빈민운동가 제정구 등이 겪은 ‘가난의 시대’. 그들의 삶을 통해 복음의 본질과 인류 보편적 가치 그리고 한국 교회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는 다큐 소설이다. 국민일보 홈페이지 ‘미션라이프’를 통해 연재물을 볼 수 있다.

일본 교토 아라즈산 아래 호즈 강변. 교토시 홈페이지.

노 선생이 "나는 어디서 왔을까"를 고민하던 일본 아라시산 아래 호즈 강변. 오사카시 홈페이지.

나는 어디서 왔을까.

어머니가 대학을 다니는 동안 나는 외삼촌 댁에서 살았다. 늘 외로웠다. 두 부부가 잘해주시긴 했지만, 어머니의 품만은 못했다. 우울했고 친구들과 노는 것도 즐겁지 않았다. 그럴 때면 먼 산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거나 눈물을 흘렸다.

앞서 말했듯 어머니 집안은 서민층이었다. 그 때문에 외가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풍족하지 않았다. 외조부 내외는 어린 내게 당신들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챙겨주셨지만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다.

어느 날로 기억된다. 상념에 빠진 나는 교토 명승지 아라시야마라는 산에서 흐르는 호즈강변을 무작정 걸었다. 도쿄로 간 어머니가 오지 않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어머니를 마중하기 위해서였다. 그만큼 외로웠다.

한데 나와 같이 강둑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던 지긋한 중년 남자가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장소를 묻는 게 ‘어디서 네 생명이 왔느냐’는 질문이었다. 무슨 신화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를 했다. 그분이 이렇게 말했다.

“너는 나무 상자를 타고 떠내려 왔다. 너의 진짜 집은 저 강 상류에 있다.”

벚꽃이 흐드러진 이 날의 기억은 줄곧 어린 내 마음에 자리 잡아 ‘나는 어디서 왔을까’ 라는 물음을 하게 됐다. 실제로 나는 그 강가에서 상류 쪽을 향해 걸어 올라가며 내가 태어난 집을 찾아보기도 했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하게 한 자그마한 사건이라고 본다.

하지만 외삼촌 댁으로 돌아오면 텅 빈 집안에서 우두커니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두 분은 전시 배급물자가 달리는 상황에서 밤낮없이 일해야 했다. 외조부모와 나를 굶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계속>

작가 전정희
저서로 ‘예수로 산 한국의 인물들’ ‘한국의 성읍교회’ ‘아름다운 교회길’(이상 홍성사), ‘아름다운 전원교회’(크리스토), ‘TV에 반하다’(그린비) 등이 있다. 공저로 ‘민족주의자의 죽음’(학민사), ‘일본의 힘 교육에서 나온다’(청한)가 있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