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망자 4개월도 안 돼 10만명 넘었는데… 트럼프는 침묵

입력 2020-05-28 17:44 수정 2020-05-28 17:49
미국 뉴욕 브롱크스 인근에 있는 하트 섬에서 지난 4월 9일 방역복을 입은 노동자들이 코로나19로 숨진 사람들을 담은 나무 관을 매장하고 있다. 외딴 섬인 하트섬은 뉴욕에서 코로나19 사망자가 폭증하자 무연고 사망자의 집단 매장지와 연고가 있는 사망자의 임시 매장지로 활용됐다. AP뉴시스

미국에서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 수가 27일(현지시간) 10만명을 넘어섰다. 첫 사망자가 발생한 지 4개월도 안돼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숨진 미군 장병들보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것이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침묵을 지켰다.

미 존스홉킨스대에 따르면 이날 기준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는 10만276명으로 집계됐다. 지난 2월 6일 캘리포니아주에서 첫 사망자가 발생한 지 111일 만에 10만명을 넘어선 것이다. 전 세계 코로나19 사망자의 약 28%에 해당하는 막대한 수치다. 확진자 수도 169만8581명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다.

미 유력 일간지인 워싱턴포스트(WP)와 뉴욕타임스(NYT)는 나란히 27일자 1면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특집 기사를 실었다. WP는 눈으로 보이는 수치 이면의 불편한 진실을, NYT는 집단 사망 사태로 가려진 개별 희생자들의 삶을 조명했다.

WP는 “미 코로나19 사망자들은 대부분 노년층이거나 저소득층, 흑인·히스패닉계”라며 불평등한 죽음에 주목했다. 사망자들 중 유명하거나 권력을 가진 이들은 거의 없었다.

희생자들 중에는 50대 이상 장년층·노년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코로나19는 특히 양로원과 노인 지원시설에 치명적이었다. 일부 주에서는 코로나19 사망자의 약 66%가 80세 이상 고령자였다.

코로나19는 가난한 이들에게 더 가혹했다. 흑인과 히스패닉 집단에서 다른 인종들보다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는데 이들의 전반적인 생활 수준이 낮은 탓이었다. 돈 없는 이들과 이민자들이 밀집해 사는 뉴욕주는 미국 내에서도 유독 피해가 극심했다. 청년 층 희생자들의 상당수는 다른 이들이 코로나19를 피해 자가격리를 하고 있을 때 경제 사정상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부유하고 의료보험을 감당한 여력이 있는 이들이 사는 지역은 코로나19 사망률이 낮다는 점도 수치로 드러났다.

코로나19로 맞은 죽음의 모습도 쓸쓸했다. 대부분의 사망자들은 부모와 형제, 연인과 친구들을 떠나 외롭게 숨을 거뒀다. 사랑하는 이들의 포옹도, 기도도 받을 수 없었다. WP는 사망자들은 컴퓨터 스크린 속 작은 이미지를 향해 혹은 두꺼운 유리벽을 사이에 둔 채 사랑하는 이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고 전했다.

지난 24일 코로나19 희생자들의 이름으로 1면을 채웠던 NYT는 이날 또 희생자들의 이름과 짧은 부고 문구로 1면을 채웠다. 상실된 삶들을 짤막한 문장으로 복원시킨 것이다. NYT는 코로나19 사망자가 10만명이라는 것은 하루 평균 1100명이 이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수치는 일부만 보여준다. 이들이 어떻게 아침을 맞이하고 밤에는 어떻게 잠들었는지 결코 전달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미 언론들은 한국전쟁 이래로 미국이 치른 모든 전투에서 사망한 미군 수를 합친 것보다 많은 이들이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었다고 지적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침묵했다. 이번 주 그 어떤 추모식이나 특별 행사도 잡혀 있지 않은 상태다. WP는 “2001년 9·11 테러 당시와는 다른 모습”이라며 “재산과 지지율, 여론조사 등 숫자에 사로잡힌 삶을 살아온 그가 ‘10만명 사망’이라는 암울한 지표에는 평소와 다르게 침묵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10만명 사망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거의 변동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업체 입소스가 이날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트럼프의 코로나19 대응을 지지한다는 응답자는 41%로 직전 조사와 비슷했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지난 1년간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이형민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