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죽음의 탑이에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강타한 미국 뉴욕주(州), 그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동네로 꼽히는 브롱크스의 44층짜리 임대아파트에 사는 마리아 로페즈(42)씨는 뉴욕타임스(NYT)에 이렇게 말했다. 그는 “우리는 구석에 놓인 검은 양입니다. 정부와 도시, 그들은 우리를 잊었어요”라고 했다.
할렘강을 따라 모리스 하이츠 인근에 우뚝 솟은 임대아파트 2개동에서 무려 100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러나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 이 아파트의 세입자를 대표하는 협회장도 지난달 코로나19에 감염돼 숨졌기 때문이다.
NYT는 26일(현지시간) “코로나19는 미국 뉴욕주 전역을 덮쳤고, 뉴욕시 북부의 브롱크스에 최악의 피해를 입혔다”고 전했다. 이 지역은 지난 10년간 도시 재건을 위한 건설 작업이 한창이었지만 코로나19로 모두 물거품이 됐다. 인구 140만명인 브롱크스에서 최소 4400명이 코로나19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힙합의 탄생지로 잘 알려진 이곳은 어쩌다 뉴욕의 바이러스 핫스폿(진원)이 됐을까.
이유는 분명했다. 인종차별과 가난, 비좁은 주택, 만성적인 건강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NYT에 따르면 브롱크스에 거주하는 성인은 천식, 당뇨병, 고혈압 발병률이 뉴욕주 62개 카운티 가운데 가장 높다고 한다. 이는 코로나19 감염 시 심각한 합병증을 불러올 수 있다는 얘기다. 건강지표 역시 최하 수준이었다. 브롱크스 지역의 기대수명은 부유층이 많은 맨해튼보다 5년 정도 낮았다.
브롱크스의 중위 가구 소득은 3만8000달러로 맨해튼(8만2000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뉴욕주 전체 평균(6만1000달러)과 비교해도 60% 수준이다.
문제는 앞으로 코로나19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모리스 하이츠 보건소는 지난달 임시 검사장을 설치해 주민 1000명을 상대로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실시했는데, 이 중 3분의 1이 양성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이애나 에르난데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브롱크스 같은 지역사회가 감염에 취약하다는 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며 “고위험군에 대한 테스트, 접촉 추적의 기회를 모두 놓쳤다”고 안타까워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