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의 Fn터치]“항공주 손절한 버핏, 당신이 실수한 거야~”

입력 2020-05-27 15:51 수정 2020-05-27 15:59
항공사 내부자들도 자사주 매입하며 건재 과시
기간산업인 항공업 ‘포스트 코로나’에도 순항할까?


주식 투자에 정답이 있을까. 하지만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고르는 종목은 ‘정답’인 것처럼 떠받들어졌다. 그가 가치투자의 모범을 보여왔기 때문일 것이다.

10여년 전 지방 신문사 몇 곳을 인수한 뒤 어릴 적 신문배달 소년 노릇을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신문의 콘텐츠가 바로 투자의 가치”라며 버킷에 신문을 던지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것은 그의 대표적인 가치투자 행보의 하나로 기억된다.

그런데 이 ‘오마하의 현인’조차도 두손 들고 항복을 선언한 종목이 있다. 바로 항공사 주식이다. 그는 지난 2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온라인으로 대체된 투자자 연례회의를 통해 자신이 보유했던 델타 유나이티드 어메리칸 등 4개 항공사 주식을 모두 손절매했다고 발표했다.

손절이유는 코로나 경제봉쇄로 항공사가 타격을 받았고 세상이 변했으며 “내가 (투자에) 실수했다”는 것이다. 분석가들은 그가 5억달러 정도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요즘 그의 손절매 발표를 비웃기라도 하듯 항공업 주가가 다시 꿈틀대고 있다. 또 그가 처분한 항공사 주식을 내부자들이 사들이며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항공업은 죽지 않았고 오히려 더 큰 성장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이다.

26일 뉴욕 증시에서 미국 항공사 주가는 평균 16%나 뛰어올랐다. S&P500 지수에 편입된 이들 9개 종목엔 버핏이 지난달 말 처분한 어메리칸(14.84% 상승) 델타(13.04%) 유나이티드(16.29%) 스카이웨스트(8.83%) 등 4개 항공사가 포함돼 있다.

뉴욕 월가에서 투자정보 전문매체 'Brush Up Stocks'를 운영하는 마이클 브러시 전 뉴욕타임스 기자는 이날 투자자 서한에서 “버핏이 큰 실수를 했다”며 버핏의 항공 주식 손절매를 비판하고 나섰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절반 이상은 델타 유나이티드 스카이웨스트 항공 주식에 대해 ‘매수’를 권유하고 나섰다. 스카이웨스트는 100% 매수 추천이었다.

이뿐 아니다. 브러시는 마켓워치 기고문을 통해 이들 항공사에 근무하는 최고경영자를 비롯한 이른바 ‘내부자’들은 자사 주식을 적극적으로 사들이는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고 소개했다. 어메리칸 항공은 110만달러어치를, 스카이웨스트항공은 160만달러 어치를 내부자들이 사들였다. 델타 항공은 64만달러 상당의 내부자 주식이 매입됐다.

물론 이는 의회가 마련한 항공업계 공적자금 지원시 자사주 매입 금지 조항과는 달리 내부자 개인의 주머니에서 나온 투자금이다. 이들의 행보는 항공업은 끝났다는 버핏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성격이 강해 보인다. 델타 항공의 한 내부자는 버핏의 항공업 ‘디스’ 다음날 여봐란 듯이 6만6000달러 어치 자사주를 샀다고 발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럼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비롯해 항공업계 내부자들까지 항공업은 끝났다는 버핏에 반기를 들고 나선 근거는 무엇일까.

우선 항공사는 기간산업이므로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 논리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미 의회와 행정부가 천문학적 규모의 채권을 팔아 조달한 580억(74조원) 달러의 공적자금이 투여됐다는 것은 항공업이 경제안보의 주춧돌임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산운용사인 US글로벌 인베트스터의 최고경영자 프랭크 홈스는 미국 취업자 15명 가운데 1명이 항공업 관련 종사자로 고용 파급효과가 큰 것이 의회가 구제금융을 지원한 이유라면서 항공사는 그만큼 (고용) 승수효과가 크다고 강조한다.

한국의 외환위기 당시 자동차 업계를 살리기위해 공적자금을 쏟아부은 이유와 많이 닮아 있다. 물론 이번에 코로나19 사태로 위기에 몰린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2조9000억원의 자금지원도 ‘기간산업’ 지원 차원으로 미국의 논리와 상통한다.

여기에 최근 경제봉쇄 완화 조치에 힘입어 항공기 산업이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탑승객 숫자는 지난달 중순 하루 8만7000명에서 이달 중순 이후 20만여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또 2개월 남짓 항공사들의 뼈를 깎는 비용절감도 영업 호전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델타 항공의 경우 경상 비용을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낮추기도 했다.

2001년 9·11 테러, 2003년 사스(급성호흡기증후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3대 위기이후 항공사 주가가 80~120% 상승한 점도 이번 코로나19 이후 항공사 주가의 추세반전을 기대하는 근거로 지목되고 있다.

다만 항공사 주가가 과대 낙폭을 만회하는 기술적 반등에 머물지, 다시 추락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한다. 역시 백신 조기개발과 코로나19의 2차 유행 현실화 여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봉쇄 해제가 곧바로 국경봉쇄 해제로 이어지는 것은 아직 이른데다,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화에 역행하는 리쇼어링을 밀어부치고 있어 항공산업 정상화에는 걸림돌이 될 수 밖에 없다. 어쩌면 항공사 내부자들의 주식 매입 운동은 버핏에 대한 반박을 넘어 트럼프의 막가파식 국수주의 정책에 대한 소극적 항명운동일지도 모른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