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다큐소설] 청계천 빈민의 성자(20): 매춘부보다 더 천대 받은 한국 노동자

입력 2020-05-27 11:02
註: 예수와 같은 헌신적 삶을 살고자 1970년대 서울 청계천 빈민들과 함께한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노 선생)와 빈민운동가 제정구 등이 겪은 ‘가난의 시대’. 그들의 삶을 통해 복음의 본질과 인류 보편적 가치 그리고 한국 교회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는 다큐 소설이다. 국민일보 홈페이지 ‘미션라이프’를 통해 연재물을 볼 수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연합군의 도쿄 폭격

당시 내가 경험한 차별은 이것만이 아니다. 태평양전쟁이 깊어지면서 의식주가 점점 힘들어졌다. 교복마저도 완제품을 생산해 낼 수 없을 만큼 상황이 악화했다. 정부에서는 궁여지책으로 값싼 교복 천을 우리에게 나눠주었다. 박 군 등 조선인에겐 그 교복 천도 지급되지 않았다. 그 장면을 지금도 뚜렷이 기억하는 거로 보아 충격적이었던 일임이 분명하다.

박 군 등과 나는 1~6학년까지 같이 다니다 졸업했으나 그 이후로는 함께 다니지 못했다. 조선인에게 중등학교 진학은 꿈같은 일이었다. 또 우리가 진학하는 교토 부립중학교는 조선 학생 입학이 아예 금지되어 있기도 했다.

그리고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그 두 친구 중 한 명이 1945년 일본 패망 후 도쿄 번화가 신주쿠로 가서 신문팔이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내가 소학교 졸업 후에 그 두 조선인 친구를 본 적이 없다.

그들의 인생은 그 후로 어찌 되었을까? 기도를 하다 두 친구를 떠올리며 늘 하나님의 품 안에서 행복하길 기도했다. 이제 그들도 나처럼 할아버지가 되어 있을 것이다.

내가 조선인을 이해하게 된 또 하나의 배경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우리 살림이 궁핍해졌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할아버지 때문에 여동생을 포함한 우리 식구는 이시진 빈민가에서 살아야 했다.

어머니에게 “도시락 싸주세요”라는 말을 꺼낼 수 없을 정도로 먹고살기가 힘들었다. 전쟁이 한창이었으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러니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가는 조선인 노동자들이야 이시진의 매춘부, 노동자보다 더 천대받았다. <계속>

작가 전정희
저서로 ‘예수로 산 한국의 인물들’ ‘한국의 성읍교회’ ‘아름다운 교회길’(이상 홍성사), ‘아름다운 전원교회’(크리스토), ‘TV에 반하다’(그린비) 등이 있다. 공저로 ‘민족주의자의 죽음’(학민사), ‘일본의 힘 교육에서 나온다’(청한)가 있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