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에 관여한 의혹으로 검찰에 출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7시간에 걸친 조사 끝에 귀가했다. 검찰은 이 부회장을 삼성바이오 회계부정과 연관된 삼성물산 합병 등 ‘승계작업’의 최종 결정권자이자 최대 수혜자로 본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자신의 결정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혐의를 대체로 부인했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검사 이복현)는 이 부회장을 특경가법상 배임,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의 피의자로 소환해 26일 오전 8시30분부터 27일 오전 1시30분까지 조사했다. 이 부회장은 오전 8시쯤 통상의 출입구인 서울중앙지검 1층 현관을 이용하지 않고 지하주차장을 통해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이 부회장의 조사는 잠시 후 영상녹화실에서 이뤄졌다. 이 부회장은 청사 내부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경제범죄형사부를 지휘하는 3차장검사와의 별도 면담은 없었다.
수사 내용이 방대했던 만큼 이 부회장 조사는 심야까지 계속됐다. 본격적인 문답은 26일 오후 9시쯤까지 계속됐다. 검찰은 인권보호수사규칙에 따른 당사자의 서면 요청, 인권보호관의 허가 등 절차를 거쳐 이 부회장을 자정 이후에도 조사했다.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30분까지는 이 부회장이 본인의 답변 내용을 점검하는 등 조서를 열람하는 시간이었다.
검찰은 제일모직의 핵심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서 벌어진 회계부정 사태를 이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삼성그룹이 진행해온 불법적 경영권 승계작업의 일환이라 봐 왔다. 이 부회장의 ‘최소비용 최대지배’를 위한 조직적 승계작업의 존재, 이 부회장이 승계 과정에서의 불법을 숨기기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넸다는 사실 등은 국정농단 사태 당시 박영수특검의 수사를 거쳐 지난해 대법원에서 인정됐다.
이 부회장이 정권에 건넨 뇌물과 삼성그룹 내 지배력 강화를 위한 승계작업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게 그간 검찰의 시각이었다.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중심으로 벌어진 승계작업은 이미 특검 수사와 대법원 판결로 ‘큰 그림’이 복원돼 있다. 삼성바이오 회계부정 사건은 이런 ‘큰 그림’ 속에서 부속처럼 튀어나온 불법이라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고 관련자들을 활발히 소환한 검찰은 결국 삼성그룹 내 최고 의사결정권자를 상대로 입장을 묻기에 이르렀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을 조사하지 않으면 안 되는 단계가 됐다”고 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조사 과정에서 승계작업과 관련된 보고를 받거나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이 부회장은 조사를 마친 뒤에도 검찰청에 출석할 때와 마찬가지로 외부의 눈을 피해 귀가했다. 법조계는 삼성 승계작업을 구체화하는 이번 수사 범위가 넓다는 점을 근거로 이 부회장이 검찰에 다시 출석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한다. 다만 검찰은 “추가 소환조사 여부 및 일정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사항이 없다”고 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