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막을 내린 국립창극단의 신작 ‘춘향’의 공연을 앞두고 국립극장은 프랑스 파리 샤틀레이극장, 미국 뉴욕 링컨센터와 브루클린음악아카데미(BAM) 등 세계적인 공연장들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 속에서 어떻게 공연을 재개할 수 있었는지 묻는 내용이었다.
처음엔 국립창극단 ‘트로이의 여인’ 초청공연이 예정됐다가 코로나19로 취소된 샤틀레이극장과 BAM의 문의에 답장을 준비했다. 그런데, 홍콩 서구룡문화지구의 앨리슨 프리드먼 공연 부문 예술감독이 국립극장의 신작 소식을 해외 공연 네트워크에 알리면서 링컨센터 등 각국 공연장으로부터 문의가 쇄도했다. 프리드먼 감독은 당초 4월 말 국립극장 70년주년 기념 국제학술행사에 참석할 예정이었다가 행사 취소 이후 신민경 국립창극단 책임프로듀서와 안부를 주고받다가 ‘춘향’ 소식을 접했다.
신민경 책임프로듀서는 “많은 나라에서 공연장 개방에 기약이 없는데, 한국에선 어떻게 공연을 올릴 수 있느냐는 질문이 가장 많았다”면서 “특히 ‘춘향’은 신작이라 연습 기간이 길고, 배우 간 접촉이 많을 수밖에 없어 더욱 관심이 컸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 공연장이 문을 걸어 잠갔지만 한국은 성공적인 방역 덕분에 공연이 계속 이어져 왔다. 두 달 가까이 휴관 했던 국립극장 등 공공극장도 5월 중순부터 차례차례 관객을 맞기 시작했다. 국립극장은 15개국 공연장들에게 1차 이메일을 통해 한국 방역 시스템과 공연 준비과정을 설명한데 이어 ‘춘향’ 폐막과 함께 세부적인 지침을 담은 2차 이메일을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1차 이메일에는 “국립극장은 안전을 위해 3~4월 공연을 모두 취소하고 코로나19 상황을 주시했다. 이 기간 정부기 2주 간격으로 전달한 지침은 큰 도움이 됐다”며 “우리도 2주마다 회의를 통해 추이를 지켜봤다. 상황이 호전됐고 5월부터는 관객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 ‘춘향’ 연습을 3월 말부터 시작했다”고 적혀있다. 또 “밀접 접촉을 방지하고자 연습에는 최대 20명까지만 참석하도록 했고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했다”며 “관객석은 지그재그 착석을 시행했는데, 티켓이 매진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괄 취소한 뒤 재예매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연장에 관객이 절반도 차지 않았지만 재정적 손해보다 공연 재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공연장에 오지 못한 관객을 위해 온라인을 통해 생중계했다”고 전했다.
장광열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역시 이달 들어 해외 무용계 관계자들의 전화나 이메일에 답하느라 바빴다. 20주년을 맞아 지난달 21~26일 대학로 일대에서 치러진 축제의 개최 비결을 알려달라는 문의였다.
장 감독은 “축제를 준비하고 마무리하는 과정에 대해 전 세계 무용계 동료들이 놀라워 했다”며 “전 세계 무용축제 예술감독 네트워크를 통해 코로나19 시대의 공연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페인 마스단자 축제, 일본 후쿠오카 프린지 댄스 페스티벌, 일본 국제 무용 페스티벌 ‘오도루 아키타’ 등 약 20개국 무용축제가 장 감독의 이메일을 받았다.
장 감독이 이메일에 밝힌 축제 개최의 노하우는 열 가지다. ①객석 거리두기 등으로 관객을 통제할 수 있는 무대 공연 일정과 밀접 접촉이 많을 것으로 예상하는 워크숍 프로그램 일정을 분리해 시행한다 ②해외 초청 아티스트 대신 국내 초청 아티스트 참여 폭을 확대한다 ③객석 30%만 사용해 관객 간 일정 거리를 확보한다 ④분장실을 추가로 확보해 대기 시에도 일정 거리 유지한다. ⑤입장 전 출연자와 관객을 대상으로 발열 체크한다 ⑥모든 관객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문진표를 작성하도록 한다 ⑦공연장 곳곳에 손 세정제를 상시 비치한다 ⑧리허설과 공연 전후 공연장 전체를 소독한다 ⑨수시로 공연장에 외부 공기가 들어오도록 환기한다 ⑩공연실황의 실시간 생중계를 통해 감상 기회를 확대한다.
앞서 장 감독은 서울국제즉흥축제 개최를 앞두고 여러 문제에 맞닥뜨렸다. 해외 아티스트들이 2주간 자가격리를 감수하는 조건으로 축제 개막 3주 전에 입국할 예정이었지만 현지 당국에서 출국을 막은 것이다. 장 감독은 축제 취소를 잠시 고려했지만 계획대로 안된다고 해서 취소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국내 아티스트들로 축제를 꾸리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조정했다. 그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상황과 마주했지만 국내 아티스트만으로도 공연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며 “그리고 새롭게 축제에 초청받은 국내 아티스트들은 공연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축제 준비 과정에서 그가 집중한 것은 코로나19 감염 위험 최소화였다. 가장 애를 먹었던 것은 무용수와 스태프의 안전을 위한 분장실의 추가 확보였다. 객석과 무대 거리두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분장실은 공간 확보부터 난항이었다. 그는 무용수와 스태프들이 가장 오래 머무르는 분장실의 안전 강화를 위해 인근 연습실을 별도로 대관했다. 그가 방역 당국 지침을 토대로 만든 열 가지 수칙 덕에 축제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그는 “무조건 공연을 하지 않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고 해외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다”면서 “해외에서도 한국의 방역 시스템을 토대로 이른 시기에 공연을 재개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세계에서 한국식 방역체계인 ’K-방역’이 큰 관심을 받고 있으며 한국 정부는 각국 정부에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공연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세계 뮤지컬계의 거장으로 ‘오페라의 유령’ ‘캣츠’ 등을 작곡한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최근 올리버 다우든 영국 문화부 장관에게 “관객이 다시 극장에 돌아올 수 있도록 한국의 대응 사례를 배워야 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로이드 웨버는 앞서 “‘오페라의 유령’이 유일하게 한국에서 공연되고 있다. 자랑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민지 강경루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