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 동력 된 두산 캡틴 오재원의 ‘무송구 투킬’

입력 2020-05-27 06:00
두산 베어스 주장 오재원의 내야 수비 자료사진. 뉴시스

두산 베어스 주장 오재원(35)이 프로 14년차의 베테랑다운 ‘야구 센스’를 발휘했다. 내야 수비에서 상대 타자·주자를 1루로 몰아 병살한 ‘무송구 투킬’로 태그플레이의 묘미를 선보였다. 비록 선행 주자를 먼저 잡지 않아 1실점했지만, 이 순간은 결과적으로 역전승의 동력이 됐다.

오재원은 26일 서울 송파구 잠실구장에서 SK 와이번스와 가진 프로야구 정규리그(KBO리그) 홈경기에 두산의 2루수 겸 5번 타자로 선발 출전했다. 6대 4로 역전승한 두산의 타선에서 오재원은 4타수 무안타로 부진했다.

하지만 수비에서 오재원은 달랐다. 수비력의 빛을 발한 순간이 있었다. 두산이 1-2로 뒤처진 1사 만루에서였다. SK 7번 타자 최준우는 두산 선발투수 크리스 플렉센의 초구를 받아쳤고, 타구는 두 차례 바닥을 튀고 오재원 앞으로 향했다.

공을 잡은 오재원. 이때 SK 1루 주자 정의윤은 2루로 달리지 못하고 갇혔다. 곧 1루 베이스로 되돌아갔다. 오재원은 공을 들고 정의윤을 뒤쫓았다. 정의윤은 1루 베이스를 밟지 않고 오재원의 태그를 피했다. 오재원은 팔을 내밀었지만, 정의윤의 몸에 닿지 않았다.

빠르게 달린 오재원은 SK 타자·주자보다 먼저 1루 베이스를 밟았다. 이때 타석에서 1루로 질주하던 최준우가 아웃됐다. 정의윤은 그야말로 ‘죽지도, 살지도 않은’ 상태로 1루 베이스 옆에 서 있었다. 오재원은 다시 정의윤에게 달려들어 태그하고 남은 아웃 카운트 하나를 채웠다. 그렇게 발로 뛴 병살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3루에 있던 SK 주자 최정이 홈 플레이트로 들어가 1점을 추가했다. 오재원이 포스아웃보다 태그아웃을 택한 결과였다. 두산 더그아웃은 정의윤의 3피트 라인 위반을 주장했지만 심판진의 수락을 끌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두산의 입장에서 1사 만루였던 위기를 고려하면 비교적 싼 값을 치르고 이닝을 끝냈다.

오재원의 판단은 가끔 과감하다. 논쟁도 몰고 온다. 과거 타격 후 부러진 방망이를 들고 1루로 달려간 ‘죽창 돌격’, 수비에서 두 팔·다리를 크게 벌려 출루 방해 의심을 받은 ‘길막 수비’로 논란을 부른 적도 있다. 두산 팬에게 최고의 주장일 수 있지만, 상대 팀 팬의 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오재원의 플레이는 종종 즐거운 이야깃거리로 남는다. 한때 두산 포수였던 NC 다이노스 주장 양의지는 지난 3일 TV로 녹화방송된 화상 미디어데이에서 “(오)재원이형은 국민 밉상이지만 나에겐 좋은 형”이라고 말해 웃음을 선사했다. ‘국민 밉상’이라는 말로 오재원의 옛 논란들을 들춰 흥미를 높일 셈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해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이뤄진 화상 미디어데이에서 다른 화면에 있던 오재원도 웃었다.

오재원의 야구 센스는 결국 경기의 룰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과감하게 판단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홈 스틸 득점이나 이날의 ‘무송구 투킬’ 같은 태그플레이가 대표적이다.

잠실구장에선 장대비가 쏟아졌다. 올 시즌의 극심한 부진에서 모처럼 찾아온 연승 기회를 잡으려던 SK 마운드의 힘은 경기 후반부로 갈수록 빗물에 씻겨나가기 시작했다. 두산 타선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1-3으로 뒤처진 8회말에 5점을 뽑아 승부를 뒤집었다.

SK는 9회초에 1점을 만회했지만, 승부를 뒤집지 못했다. 지난주 마지막 경기인 24일 인천 홈경기에서 KIA 타이거즈를 4대 3으로 잡고 하루를 휴식한 뒤 올 시즌 첫 2연승에 도전했지만 두산의 뒷심을 막지 못했다. 6회초 1사 만루에서 오재원에게 가로막힌 대량 득점 기회를 1득점으로 끝낸 게 뼈아팠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