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기 위해 수출 중심에서 내수 위주로 경제 전략을 전환하려 한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코로나19 사태로 미국 뿐아니라 유럽에서도 중국 경계론이 부상하는 등 중국과 서방 세계의 디커플링(탈동조화) 움직임이 가속화될 것이란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2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3일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경제계 위원 연석회의에서 “앞으로 국내 유통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새로운 경제 발전 계획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향후 내수를 출발점이자 기반으로 삼아 완전한 내수 시스템 구축을 가속화하고, 과학기술 및 다른 분야의 혁신을 대대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시 주석의 발언은 중국이 1990년 채택해 지금의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된 ‘국제경제대순환’ 전략을 포기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SCMP는 분석했다.
경제전문가 후싱더우는 이에 대해 “미국이나 서방 세계와의 탈동조화 등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일종의 대비책”이라며 “중국은 역경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그는 다만 “중국이 그동안 진행해온 시장개혁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며 “중앙정부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폐쇄적 형태의 계획경제로 돌아가서도 안 된다”고 조언했다.
중국은 기존 수출중심 성장 전략에 따라 부품을 수입해 완제품으로 재수출하는 식으로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했지만, 미·중 무역·기술전쟁과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 각국에 경제민족주의가 부상하면서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시 주석은 “중국은 세계 경제의 깊은 불황과 보호무역주의 및 일방주의, 지정학적 리스크 등 외부적 악재에 직면해 있다”며 “우리는 기술과 시장에서 더 자립하고, 디지털 경제와 스마트 제조, 생명과학, 신소재 분야 등을 성장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ANZ은행 이코노미스트인 레이먼드 영은 “중국의 전략적 전환은 향후 2~3년간 외부 수요가 회복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며 “문제는 어떻게 경제 전환을 하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CNBC는 코로나19 이후 중국 내 생산시설 가동 중단으로 어려움을 겪은 기업들이 중국 외 다른 지역으로 공급망 다변화에 나서고, 미국 등 일부 국가가 기업들에게 생산시설의 자국 이전을 압박하면서 중국이 ‘세계의 공장’ 지위를 상실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들의 자국 복귀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미·중 갈등에 따라 미국 의회가 중국 기업의 자국 증시 상장 조건을 강화하는 새 법안을 추진하자 중국 기업들이 미국 증시를 떠나 자국으로 복귀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글로벌 타임스는 “이 법안은 미국 증시 상장 기업인 넷이즈나 바이두 같은 거대 첨단 기술 기업을 포함한 중국 기업들을 자극했다”고 전했다.
미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들 가운데 바이두는 홍콩 2차 상장을 공식화했고, 넷이즈와 징둥도 6월 홍콩에서 2차 상장을 할 예정이다.
둥덩신 우한과기대 금융증권학원 원장은 “미국의 새 법안은 악의적으로 중국 기업들을 겨냥하고 있다”며 “미국은 화웨이부터 미국 증시 상장 기업들까지 공격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의 추가 제재로 대만 TSMC 등 반도체 공급망 와해 위기에 몰린 화웨이가 삼성전자 파운드리 부문과 협력하길 희망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대만 경제일보는 화웨이가 삼성전자의 도움을 원하고 있으며, 업계는 화웨이가 한국 반도체 기업과 손을 잡고 미국의 제재를 극복하려 할지 주목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미국의 의도를 무시하고 선뜻 대만 TSMC의 빈자리를 메우려 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최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영국 내 5세대 이동통신(5G) 사업에서 중국 화웨이의 참여를 배제할 것을 지시하는 등 유럽에서도 화웨이 배제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