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냐 中이냐’ 유럽도 골머리… 양측 모두 거리 두는 제3의 길 모색

입력 2020-05-26 17:26 수정 2020-05-26 17:30
마스크를 쓴 한 남성이 25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연합(EU) 본부 앞을 지나고 있다. EPA

코로나19 책임 공방으로 시작된 미·중 갈등에 유럽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가 저물어가는시대에 두 초강대국 중 누구와 함께하느냐를 두고 유럽 역시 양자택일의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의도하는 신냉전 구도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자신들과는 다른 가치를 지닌 중국을 견제하는 방법을 찾기 위한 유럽 정치인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26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의 외교수장격인 조셉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이날 독일 외교관들과의 화상 회의에서 “전문가들은 오랫동안 미국 주도 국제질서의 종언과 아시아 시대의 도래를 얘기해왔다”며 “이제 그것이 우리 눈앞에 놓여져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환점은 우리에게 미국과 중국 둘 중 어느 쪽을 편들 것인지를 압박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 미국이 국제 리더로서의 책임을 방기하면서 리더십의 공백이 발생했고 예상보다 빠르게 선택의 시점이 도래했다는 의미다.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보렐 대표는 미국도, 중국도 아닌 민주주의에 기반한 유럽적 가치를 국제사회에 내세워야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EU 27개국은 우리 자신의 이익과 가치를 따라야 한다”며 “미·중 그 어느 쪽으로부터든 도구로 사용되는 일을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렐 대표는 유럽만의 목소리를 높이는 방법의 첫 걸음으로 유럽의 대(對) 중국 공세 강화를 예고했다. 미국이 저버린 국제 리더의 자리를 패권 경쟁국인 중국이 대체하는 일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의 부상이 인상적이고 경의를 불러일으킨다”면서도 “많은 의문과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 대한 더 강력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나머지 아시아 민주주의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뜻한다”고 강조했다.

경제·안보·기술 영역에서 아시아의 위상이 커지고 있지만 중국보다는 한국과 일본 등 민주주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막무가내식 ‘중국 고립정책’에 소극적 반응을 보였던 유럽으로서는 이례적인 주장이다. 가디언은 “EU는 중국에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싶어하나 그간 트럼프 식의 극단적 대중 압박에 대한 혐오감이 이를 억제해왔다”며 “유럽이 중국을 내버릴 경우 주요 국제 파트너가 트럼프 행정부 밖에 남지 않는다는 점도 EU의 소극적 태도에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홍콩 자치권 침해 등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 유럽 측에 시장 개방을 거부하는 움직임 등이 이어지면서 EU의 기류가 바뀌고 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 등이 유럽 내부의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을 지원해 서구 민주주의 가치를 흔들고 있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고조되고 있다.

다만 유럽의 새 기조가 어느 정도의 실효성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가디언은 “EU가 중국에서 들여오는 일일 수입품 규모는 10억 유로(약 1조3508억원)에 달한다”며 유럽 경제의 높은 대중 의존도를 지적했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EU 내부의 분열이 심화되고 있는 것도 변수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