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협 악당” 비판했던 故심미자 할머니 이름은 왜 사라졌나

입력 2020-05-26 10:09
2016년 8월 29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공원 통감관저터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제막식에 참석한 김복동 할머니와 박원순 서울시장이 대지의 눈 조형물을 어루만지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가 두 차례의 기자회견을 통해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그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 대한 폭로에 나서면서 오래전부터 일각에서 제기되던 비판이 재조명되고 있다. 그중 하나는 정대협을 비판했던 고(故) 심미자 할머니가 남산 ‘기억의 터’ 피해자 명단에서 제외된 것이다.

최근 심 할머니의 이름이 기억의 터에 세워진 조형물 ‘대지의 눈’에서 빠진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었다. 해당 조형물에는 피해자 할머니 247명의 이름이 가나다순으로 새겨져 있는데, 심 할머니의 이름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기억의 터는 정대협과 여성계 등 시민단체가 추진위원회를 구성, 국민 성금을 모아 서울시와 함께 만든 공간이다. 2016년 8월 제막식을 했다. 조형물에 새겨질 피해자 명단은 정대협 측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정대협 대표는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인(전 정의연 이사장)이었다.

심 할머니는 2004년 위안부 피해자 32명과 함께 ‘세계평화무궁화회’ 명의로 낸 성명에서 정대협을 “악당”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당시 성명에서 “(정대협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역사의 무대에 앵벌이로 팔아 배를 불려왔다”고 주장했다.

“윤정옥 (당시) 정대협 대표는 ‘아시아여성평화기금을 받으면 자원해 나간 공창(公娼)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면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주는 위로금을 당신들이 뭔데 ‘공창’ 운운하며 우리를 두 번 울리는 것이냐”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자를 위해 결성된 단체가 자신들과 입장이 다른 피해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한다는 비판이었다.

이와 관련 박유하 세종대 교수는 2013년 펴낸 저서 ‘제국의 위안부-식민지 지배와 기억의 투쟁’에서 “정대협이 말하는 ‘당사자’들이란 어디까지나 지원단체의 생각에 따르는 이들에 한정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그녀(심 할머니)는 일찍부터 정대협과 갈등을 겪었고 세상에 호소하기도 했지만 공론화되는 일은 없었다”면서 “(이같은 주장이) 우리 사회에 조금도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당사자와 정대협 간 힘의 차이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위안부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커다란 관심을 얻고 그에 따른 힘을 얻으면서 정대협은 권력화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의연 관계자는 심 할머니 등 의견이 다른 피해자를 배제해 왔다는 비판에 대해 “정대협과 정의연이 30년간 위안부 피해자들과 함께 운동을 이어오면서 피해자뿐 아니라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여러 차례 견해차나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며 “심 할머니의 성명도 이같은 과정에서 불거진 하나라고 본다”고 해명했다.

이 할머니는 25일 대구 인터불고호텔에서 2차 기자회견을 열고 “30년간 이유도 모른 채 끌려다녔다. 왜 모금을 하는지 몰랐다”고 밝혔다. 1차 폭로 이후 윤 당선인이 찾아와 용서를 구했고, 이를 이 할머니가 받아줬다는 일각의 보도에 대해서는 “한번 안아달라고 해서 ‘이게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안아줬고, 눈물이 나서 울었는데 그걸 가지고 ‘용서했다’고 하더라. 너무 황당했다”고 말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