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대만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중국군은 대만 부근 남중국해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예고하면서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지 말라”고 미국에 재차 경고하고 나섰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홍콩 시위대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고, 대만이 중국 본토를 겨냥한 미사일 개발을 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홍콩과 대만이 ‘반중국 전선’’의 화약고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올여름 대만이 실효 지배하는 남중국해 섬 인근에서 항공모함을 동원한 대규모 훈련을 하기로 해 미·중 군사적 갈등이 고조될 전망이라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5일 보도했다.
중국군 소식통은 “항모 전단이 프라타스 군도(둥사군도) 인근을 거쳐 대만 남동부의 필리핀해에서 군사훈련을 할 것”이라며 “(중국의 항공모함인) 랴오닝함과 산둥함 2척이 모두 참여할지, 아니면 한 척만 참여할지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프라타스 군도는 대만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섬들로 산둥함이 배치된 하이난다오에서 대만 남부 바시해협을 거쳐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길목에 있다.
앞서 교도통신은 중국군이 하이난다오 부근 남중국해에서 프라타스 군도 탈환을 상정한 대규모 상륙훈련을 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중국군 관계자는 이에 대해 “대만군 200명이 주둔하는 작은 섬을 점령하려고 항모를 보내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대만 군사전문가 츠러이는 “상륙 훈련은 대만 공격을 위한 준비로 보일 수 있다”며 “이는 중국이 해당 지역 전체를 군사화하려는 계획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중국 군사 전문가 쑹중핑은 “이번 군사훈련은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미국을 향한 인민해방군의 경고”라고 분석했다.
또 리커창 중국 총리가 이번 전인대 정부 업무보고에서 대만과의 ‘평화통일’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중국 정부의 무력 사용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시진핑 집권 후 6차례 업무보고에서 늘 대만과의 평화통일 및 ‘92공식’ 관련 언급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국 국방부는 최근 미국 정부가 최첨단 어뢰 등 1억8000만달러(약 2200억원) 상당의 무기를 대만에 판매하기로 한 데 대해 “난폭한 내정 간섭”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국방부는 전날 “무기판매는 ‘하나의 중국 원칙’ 등을 위반한 행위이자 중국 내정에 대한 심각한 간섭”이라며 “대만 차이잉원 총통은 외부세력을 등에 업고 양안관계를 훼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집권 2기를 시작한 차이 총통은 중국 본토와 노골적으로 각을 세우고 있다.
차이잉원 총통은 최근 취임 연설에서 비대칭 전력 개발로 자체 방어 능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중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 개발을 본격화하겠다는 의지라고 SCMP는 분석했다.
군사 전문가는 “대만의 비대칭 전력에는 미사일, 어뢰, 항공·해양 드론, 사이버 무기 등이 포함되지만, 미사일은 적을 공격하고 위협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것”이라고 SCMP에 설명했다.
차이 총통은 ‘홍콩 국가보안법’과 관련, 전날 밤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중국 전인대가 직접 홍콩보안법 제정에 나서 홍콩의 앞날을 위협하고 있다”며 “모든 민주 진영의 동지들은 홍콩인과 함께 할 것”이라고 밝혔다.
차이 총통은 “만약 홍콩보안법이 실시되면 홍콩의 자유민주와 사법 독립의 핵심가치는 엄중한 타격을 받고 홍콩인에 50년간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은 파산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만에서는 ‘오늘의 홍콩이 내일의 대만’이라는 위기감도 높아지고 있다.
대만 매체들에 따르면 쉬융밍 시대역량 대표는 “중국이 제정하려는 보안법은 홍콩의 일국양제 유지 약속을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는 중국이 대만에 보내는 경고”라고 주장했다.
특히 홍콩 보안법 논란으로 홍콩에서 대만으로 이주하려는 문의가 10배 이상 증가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중국의 홍콩 통제 시도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며 “중국은 전 세계가 코로나19 대처에 정신이 없는 사이 경제적, 외교적, 군사적 힘을 마구 과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시진핑 국가주석 체제의 중국 지도부가 과거와 달리 국제사회의 비난에 위축되지 않는다”며 홍콩 보안법 제정은 2014년 러시아가 단행한 크림반도 강제 병합의 ‘비폭력 버전’이라고 평가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