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영화, ‘기생충’ 타고 할리우드를 뚫다

입력 2020-05-25 16:44 수정 2020-05-25 16:47
영화 '지구를 지켜라' 포스터. 배급사 제공


한국영화와 한국 제작진의 할리우드 진출이 본격화되고 있다. 속도도 점점 빨라지는 듯하다. 잇달아 전해지는 할리우드 진출 낭보는 유수의 한국 감독들이 일찌감치 할리우드에서 신뢰를 쌓은 것에 더해, 영화 ‘기생충’의 미국 아카데미상 석권이 덧대진 결과로 풀이된다.

투자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는 할리우드를 겨냥해, 할리우드 기반으로 자체 제작한 영화 ‘엔딩스 비기닝스’가 오는 6월 개봉한다고 25일 밝혔다. 삼각관계 로맨스를 그리는 이 작품은 ‘조’ ‘뉴니스’ ‘이퀄스’ 등 멜로 수작을 선보였던 드레이크 도리머스 감독의 작품으로, 한국 콘텐츠 기업이 이처럼 할리우드 진출해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과거에는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올드보이’(2003)나 ‘써니’(2011)처럼 국내 흥행작의 판권이 팔려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 된 경우만 종종 있었다. 감독들도 흥행작에 힘입어 할리우드에 진출하곤 했는데,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 등을 발판삼아 ‘스토커’(2013)를 만들었고, 김지운 감독은 ‘달콤한 인생’(2005) 등을 통해 ‘라스트 스탠드’(2013)를 연출했다.

미국은 전 세계 박스오피스 매출의 약 30%를 차지하는 시장이다. 중국과 더불어 가장 큰 영화 마켓으로, 미국에서의 성공이 곧 세계적인 흥행인 셈이다. CJ ENM은 ‘엔딩스 비기닝스’ 외에도 미국판 ‘써니’, ‘극한직업’ 등 영화 콘텐츠를 미 유니버설 스튜디오 같은 유수의 제작사랑 제작하기로 합의하고, 수년 전부터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한 작업에 몰두해왔다.

한국 영화를 바라보는 할리우드의 달라진 시선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는 또 있다. 이달 초에는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2003)가 개봉 17년 만에 리메이크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픈 과거로 정신질환을 앓는 청년 병구(신하균)가 화학회사 사장(백윤식)을 외계인으로 여기고 납치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이 영화는 기발한 상상력과 연출이 돋보인다. 그러나 개봉 당시 성적이 관객 7만여명을 동원하는 것에 그치면서 한국 영화 애호가들에게 숨은 걸작으로 평가받아왔다. 메가폰 역시 장 감독이 다시 잡으며, 내년 상반기 촬영에 들어간다.

오스카 4관왕을 달성한 ‘기생충’의 효과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미 현지 언론들은 ‘지구를 지켜라’ 리메이크 소식을 전하면서 이 작품의 각색 작업을 ‘기생충’ 투자배급사 CJ ENM이 총괄한다고 앞다퉈 보도했다. 할리우드 현지에서의 배급 경험과 한국 영화 콘텐츠에 대한 자신감도 붙었다. ‘기생충’의 성공신화를 이끌었던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은 앞서 “전 세계 관객이 큰 주제를 갖고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기생충’의 성공으로 알았다”고 전했다.

액션 영화 ‘악녀’(2018)로 관객과 평단의 찬사를 받은 정병길 감독 역시 할리우드 활동에 시동을 걸었다. 최근 톰 크루즈, 톰 행크스 등 유명 배우들이 속한 미국 3대 에이전시 CAA와 계약을 맺은 정 감독은 SF 영화 ‘애프터번’을 연출하고 있다. 제라드 버틀러가 영화 타이틀롤을 맡았다. 이밖에 ‘악녀’의 미국 드라마 버전도 제작될 예정이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