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집단면역 정책은 실패했다”… 前보건청장의 고백

입력 2020-05-25 16:31
지난달 29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시민들이 거리를 거닐고 있다. EPA연합뉴스

스웨덴 정부가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채택한 ‘집단면역’ 정책은 실패라고 전직 공공보건청장이 말했다. 스웨덴 전·현직 정부 관계자 중 집단면역에 대한 비판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24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은 아니카 린데 전 공공보건청장이 스웨덴 정부의 침묵을 깨고 집단면역에 대한 논의에 불을 지폈다고 보도했다. 린데 박사는 2005년부터 2013년까지 8년간 공공보건청장을 역임하며 돼지독감과 사스 사태 등을 총괄한 전염병 베테랑이다.

린데 박사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나날이 치솟는 사망률을 보고 집단면역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며 “우리는 더 철저히 준비를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태 초기에 봉쇄령을 내렸더라면 이렇게 많은 국민이 목숨을 잃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웨덴은 덴마크와 핀란드, 노르웨이 등 북유럽 이웃 국가들에 비해 사망률이 4~9배 높다. 영국 옥스퍼드대가 구축한 통계 사이트 ‘아워 월드 인 데이터(Our World in Data)’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13∼20일 일주일간 스웨덴의 인구 100만명당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6.08명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린데 박사는 “사태 초기에는 우리가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결국 인구 대부분이 감염될 것으로 생각했다”며 집단면역 정책을 지지했던 이유를 밝혔다. 그녀는 “하지만 많은 국가들은 봉쇄를 통해 결과적으로는 감염률을 낮출 수 있었다”며 “예상과 달리 항체 생성 속도가 너무 느린 것을 보고 정책이 실패했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스웨덴 정부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코로나19 대응책으로 봉쇄 대신 집단면역 전략을 채택했지만 결과는 참담한 수준이다. 5월 초까지 스톡홀름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항체를 보유할 것이라는 정부 예상과 달리 실제 항체 보유율은 7.3%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집단면역은 사회 구성원 60% 이상이 항체를 갖춰야 가능한데, 여기에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가디언은 집단면역 정책을 취하면서 노인 등 취약계층을 보호하겠다는 발상도 애초에 현실성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스웨덴 내 코로나19 사망자의 49%는 노인요양원 입주민이다. 특히 70세 이상 노인 사망자는 전체 사망자의 90%에 달한다.

정책 실패가 명백해지면서 스웨덴 학계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당국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안데르스 텡넬 현직 공공보건청장은 이날 국영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스웨덴의 상황이 비극적인 건 사실”이라면서도 “봉쇄 조치를 시행했어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