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 경제’ ‘포용 사회’가 떠오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저소득·빈곤층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최대 피해계층으로 떠오르면서 포용의 가치가 강조되는 분위기다. 코로나19로 격차가 심해진 경제·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작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급선무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같은 가치를 얼마나 실현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또 다시 불거진 G2(미국·중국)의 정치·경제적 갈등으로 불평등이 더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뉴욕시 보건부는 최근 관할 지역 60여곳의 코로나19 사망자수를 분석해 발표했다. 고소득 백인층이 거주하는 맨해튼 그래머시 파크 지역은 인구 10만명당 사망자가 31명 수준이었다. 이에 비해 퀸즈의 파 로커웨이에선 10만명당 444명으로 무려 14배나 사망자가 많았다. 파 로커웨이는 저소득·빈곤층이 주로 거주하고 있는 지역으로 흑인과 히스패닉 등 유색인종 비율이 65%를 넘는다. 마크 레빈 뉴욕시의회 보건위원장은 블룸버그 통신에 “그동안 존재하던 불평등이 드러난 단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같은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사회·경제적 포용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JP모건 CEO인 제이미 다이먼이 대표적이다. 그는 최근 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코로나가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지역사회와 유색 인종에 큰 타격을 가했다. 이전부터 좋지 않았던 보건·경제적 불평등이 더 심해졌다”면서 “코로나발 경제위기를 ‘포용적 경제’의 확대를 위한 모닝콜로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포용경제가 경제 회복을 위한 촉매가 될 수 있다고도 했다.
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 추진에서도 포용성은 강조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제위기 대안으로 떠오른 그린 뉴딜은 경제구조의 친환경적인 전환과 투자 활성화를 강조한다. 홍남기 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1일 저소득층 보호를 위한 정책지원을 언급하면서 “사회안전망 강화와 사각지대 해소 등 포용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이 ‘포스트 코로나’를 주제로 마련한 웨비나(webina·웹세미나)의 키워드도 포용성이었다. 세바시티앙 오키벤띠 EU집행위 에너지총국 과장은 그린 뉴딜을 강조하면서 “그린뉴딜에서 중요한 것은 포용성이다. 성공적인 그린 뉴딜이 되려면 사회 각 부문의 요소를 포용해야 하며, 이를 위한 시민들의 인식 전환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는 포용의 가치와 함께 만만치 않은 복병을 끌어들였다. G2의 갈등이다. 월가의 대표적 비관론자이자 ‘닥터 둠(Dr.Doom)’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최근 영국 BBC와 가진 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국이 나머지 국가들에 대해 내편에 설 것인지, 아니면 반대편에 설 것인지 묻게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세계는 더 분열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로나19 책임론을 두고 또 다시 외교·무역 갈등이 커지고 있는 G2의 행보를 비관적으로 본 것이다.
이들이 우방국들에 대해 ‘선택지’를 강요하게 되면 불평등 해소는 뒷전에 밀릴 수 있다. 각국간 개방성과 투명성, 포용성 등을 경제협력을 추구해왔지만, ‘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G2의 압박 상황에서 돌파구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