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이끌 33살 장혜영…그의 10년 전 이별 선언문은

입력 2020-05-25 10:55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일 당시 장혜영 신임 정의당 혁신위원장. 뉴시스

정의당이 ‘SKY 자퇴생’으로 알려진 장혜영 비례대표 당선인을 혁신위원장으로 선정하면서 그가 과거 대학을 자퇴하며 남긴 대자보와 활동 이력이 새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장혜영 신임 정의당 혁신위원장은 지난 2011년 11월 연세대 신문방송학과에 06학번으로 재학하면서 ‘공개이별 선언문’이라는 대자보를 학교에 걸고 자퇴를 선언했다.

당시 장 위원장은 2010년 3월 자퇴한 고려대의 김예슬씨, 2011년 10월 자퇴한 서울대의 유윤종씨에 이어 세 번째로 SKY 자퇴 행렬에 동참한 것이었다.

앞서 김씨와 윤씨는 학벌 폐지 등의 이유를 앞세운 반면 장 위원장의 자퇴 명분은 대학 졸업장에 얽매이지 않고 더 자유롭고 한계 없는 자신을 찾겠다는 선언이었다.

장 위원장은 대자보에서 “학교보다 더 좋은 것을 찾았다. 딱딱한 학벌 폐지론자가 아니라 단지 자유를 더 소중하게 생각할 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학에 안갔으면 연세에 안 왔으면 또 그 나름 다른 무언가를 만나 지금으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다른 시간 속에 또 다른 느낌들을 가지며 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혜영 신임 정의당 혁신위원장의 '모두 사랑하고 있습니까' 책. 연합뉴스

자퇴 이후에는 ‘모두 사랑하고 있습니까’라는 책을 펴내고 고단했던 가족사, 영화감독 활동기, 자퇴를 결심한 심정 등을 일인칭 화자 형식의 부드러운 문체로 전하기도 했다.

장 위원장은 책에서 “교환학생에서 돌아와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은 지금, 대학에서의 내 생활은 전혀 자유롭지 않다”며 “자유를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2018년 정의답 입당 전까지 2년간 세계여행을 하는가 하면 ‘생각 많은 둘째 언니’라는 이름으로 유튜버 활동도 했다. 또한 장애인 동생의 자립을 담은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 제작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왔다.

장 위원장은 앞으로 혁신위원장으로서 정의당을 재정비하는 역할을 맡는다. 장 위원장은 24일 혁신위 발족식에서 “혁신이란 어쩌면 정의롭다는 게 무엇인가를 규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시대에 진보정당이 가져야 하는 건 뭔지 새로운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 위원장이 2011년 내건 공개이별 선언문 전문

친애하는 학우 여러분, 나는 06년도에 사과대에 입학한 장혜영입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 앞에서 공개 이별을 선언합니다. 나의 이별 상대는 여러분도 잘 아는 연세, 우리 학교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누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우리가 자유를 진리하고, 또 진리를 자유케 하리라. 나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자유를 진리함이란 우리는 언제나 자유로웠으며 또한 계속 그러하리라 함을 깨닫는 것이고, 진리를 자유케함이란 스스로 진실이라 믿는 바를 자유로이 펼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제 날개의 자유를 깨달은 새들이 하염없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처럼.

새들에게 날개의 자유가 있다면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에게는 스스로가 믿고 사랑할 것을 선택할 자유, 그렇게 선택한 아름다움을 지켜낼 자유, 즉 `사랑에의 자유`가 있습니다. 이야말로 우리가 깨닫고 소중히 여겨야 할 진실에 가장 가까운 무언가가 아닐까요.

문득 생각해봅니다. 만일 연세를 만나지 않았다면, 대학에 오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이 모든 지점들에 닿을 수 있었을까. 이 느낌들, 생각들을 가질 수 있었을까. 눈 앞의 이 순간이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음을 가슴 저리게 느낄 수 있었을까.

글쎄요. 아쉽지만 이건 그냥 과장된 강조의 수사입니다. 대학에 안 갔으면, 연세에 안 왔으면 또 그 나름 다른 무언가를 만나 지금으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다른 시간 속에 또 다른 느낌들을 가지며 살았겠지요. 우리가 사는 시간은 결코 역행하는 법이 없기에 ‘만일 내가 그 때 너를 못 만났다면’ 같은 가정은 치사한 얘기입니다. 한편 가지 않은 길을 애써 폄하하며 상대적으로 현재를 비교우위에 놓아보려는 시도 역시 참으로 안타깝고 볼품없는 사업입니다.

나는 지금 연세에게 천의 고마움과 천 하나의 아쉬움을 담아 담담히 작별을 고합니다. 고마워, 학교야. 근데 우리 이제 더는 아냐.

감히 말하건대 우리 연애는 연탄재 발로 차도 될 만큼은 뜨거웠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교정에서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이 너무나 좁아보여 나는 바야흐로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연세와 깨진다 하니 주변에서는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아주 다채로운 반응의 구절판을 맛보았습니다. 4년을 다녀놓고 이제 와서 아깝게 무슨 짓이냐. 조금만 참으면 그 또한 다 지나가는 것을. 혹은 네가 배가 불렀구나, 한국 사회에서 고졸로 사는 게 만만해 보이냐. 심지어는 그렇게 해서까지 쿨해보이고 싶냐는 소리까지도 들었습니다.

허나 이 이별에는 아무런 당위도 없습니다. 물론 핑계를 대자면 삼일 밤낮을 주워섬길 수 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다 마음에 안 들더라, 이런 줄 알았는데 저렇더라, 속았다, 지쳤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나의 변심을 변호하기 위해 한 때의 연인을 깡그리 몹쓸 존재로 전락시키는 이별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떠나는 까닭은 그저 여름이 가을로 변하듯 내 마음이 어느새 학교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 마음이 학교를 떠난 이유는 또 다른 긴 사연입니다.

사랑에의 자유, 잎사귀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선배를 둔 우리가 사랑 앞에 자유롭지 못하다면 그 누가 한 점 부끄럼 없이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까.

나는 이제 연세가 아닌 다른 사랑을 향해 떠납니다.

재미없는 질문을 몇 개 남기고 싶습니다. 학우 여러분은 학교를 사랑합니까? 예비 학우 여러분은 연세와, 아니 대학과 사랑에 빠져 있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왜 굳이 지금 여기 있습니까? 혹시 다른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사람은 무엇으로 삽니까? 정말 내일이 오나요? 내가 이런 질문을 던질 때 네 명의 해맑은 영국 청년들은 이렇게 노래해 주었습니다. ‘All You Need Is Love’(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뿐이에요). 모두 사랑하고 있습니까?

유승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