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과 중국 ‘홍콩 국가보안법’ 충돌 격화…홍콩 시위 ‘재점화’

입력 2020-05-24 17:37
홍콩에서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가 벌어진 24일 경찰이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다.AP연합뉴스

중국 정부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방침에 따른 파문이 미국과 영국, 캐나다, 유럽연합(EU) 등 서방과 중국의 갈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은 홍콩 보안법이 제정되면 홍콩의 경제·통상 분야 특별지위를 박탈하겠다고 연일 경고하고 있고, 영국·캐나다·호주 등 영연방 외무장관들과 EU도 비판에 가세했다.

홍콩에서는 한동안 소강상태였던 시위가 홍콩 보안법 논란을 계기로 다시 격렬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2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홍콩의 마지막 영국 총독인 크리스 패튼은 중국의 홍콩 보안법 제정 추진에 대해 “중국이 홍콩을 배신했다. 영국은 홍콩을 위해 싸워야 할 도덕적·경제적·법적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패튼은 일간 더타임스에 “홍콩의 자율성은 지난 1984년 영국과 중국의 공동 선언에 담긴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정신에 따라 보장돼 왔다”며 “그러나 중국은 홍콩보안법을 통해 이 선언을 파괴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중국은 새로운 독재를 펼치고 있다”며 “영국은 중국이 일국양제 정신을 파괴하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지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패튼은 1997년 영국이 홍콩을 중국에 이양할 당시 총독을 역임했다.
홍콩의 마지막 영국 총독 크리스 패튼.연합뉴스

패튼을 비롯한 세계 각국 정치인 186명은 공동성명을 통해 홍콩보안법이 “홍콩의 자치권과 법, 기본적인 자유를 포괄적으로 침해한다”고 밝혔다.

앞서 도미니크 랍 영국 외무장관, 마리스 페인 호주 외무장관, 프랑수아-필립 샴페인 캐나다 외무장관은 22일(현지시간) 공동성명을 내고 “우리는 홍콩에서 국가안보와 관련한 법을 도입하려는 제안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며 “그런 법을 제정하는 것은 홍콩에 대해 고도의 자치를 보장하는 일국양제 원칙을 명백하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대변인을 통해 “중국이 홍콩의 인권과 자유, 고도의 자치를 존중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고,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성명을 통해 “홍콩의 고도의 자치권은 지켜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도 성명을 통해 “미국은 일방적이고 제멋대로 홍콩에 국가보안법을 제정하려는 중국 전인대의 제의를 규탄한다”며 “그 결정은 중국이 홍콩에 약속한 고도의 자치권에 대한 종말의 전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케빈 해싯 백악관 경제 선임보좌관은 “(홍콩 보안법은) 중국과 홍콩 경제에 매우 좋지 않고,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중국은 국가 안보와 관련한 법적 공백을 이유로 홍콩 보안법 제정이 시급하다며 강행 의지를 보이고 있다.

홍콩 문제를 담당하는 한정 중국 부총리는 23일 정협 위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홍콩 국가보안법은 국가 안보를 해치는 소그룹의 사람들만 겨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전했다.

한 부총리는 또 “세계 어디에도 국가 보안 법률이 전혀 없는 곳이 없지만, 홍콩에는 공백이 있다”며 “중앙정부가 이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을 진다”고 말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홍콩 보안법은 홍콩에 대한 미국의 개입에 종말을 고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콩에서는 홍콩 보안법 제정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져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이 빚어졌다.

SCMP에 따르면 이날 오후 홍콩 번화가인 코즈웨이베이 소고 백화점 앞에서는 수천 명의 시위대가 모여 홍콩보안법과 ‘국가법’(國歌法) 반대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8000여 명을 시내 곳곳에 배치했다.
24일 최루탄이 터지는 홍콩 시내.AFP 연합뉴스

시위대는 ‘하늘이 중국 공산당을 멸할 것이다(天滅中共)’ 등의 팻말을 들고 ‘광복홍콩 시대혁명’ ‘홍콩인이여 복수하라’ ‘홍콩 독립’ 등의 구호를 외치며 완차이 지역까지 행진을 시도했다.

홍콩 민주화 시위의 주역 조슈아 웡은 “내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하게 되더라도 계속 싸울 것”이라며 “우리는 싸워서 이 법을 물리쳐야 한다”고 말했다. 홍콩 야당인 피플파워의 탐탁치 부주석은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은 시위대가 코즈웨이베이 지역에 모이자 오후 1시 반쯤부터 최루스프레이와 최루탄을 발사하며 해산에 나섰고, 물대포를 쏘기도 했다.

홍콩에서는 다음 달 4일 ‘6·4 천안문 사태’ 기념집회가 열리며, 9일에는 지난해 6월 9일 100만 시위를 기념해 다시 집회가 열릴 수도 있다. 7월 1일에는 홍콩 주권반환 기념 시위가 예정돼 있는 등 시위가 다시 격화될 전망이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