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각지대’ 해외건설 노동자 “정부가 나서달라” 호소

입력 2020-05-24 15:39 수정 2020-05-25 00:27

아랍에미리트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A씨는 공사장에서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방역 조치가 미비해 불안에 떨고 있다. S건설 직원 A씨 일터에선 지난 7일 3명의 인도인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2주간 자가격리 및 업무 일시 중단 등의 조치를 예상했으나 통상 쉬는 날인 그 주 주말만 문을 닫았을 뿐 작업은 계속됐다.

방역 대책은 코로나19 진단검사와 마스크 지급이 전부였다. 회사는 확진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도 제공하지 않고 있다. A씨 가족은 “다행히 직원 전원이 음성으로 나왔다고 들었지만, 잠복기가 있으면 어떡하냐”며 “내 가족이 감염되면 어떡하나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속 직원이 휴무나 귀국 의사를 표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중동 지역에 나가 있는 건설업체의 근로자들이 현지 외국인들의 발병과 허술한 방역 대책으로 인해 불안에 떨고 있다. 코로나19 사각지대에서 구해 달라며 목소리를 높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해외 건설 근로자들을 코로나에서 지켜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지난 7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글에는 5000명 넘는 사람이 동의했다.

한국 건설회사가 많이 진출한 중동에서는 코로나19 확산이 심해지고 있다. 24일 오후 7시 기준 아랍에미리트 확진자 수는 2만9485명으로, 전날 2만7892명에서 1593명이 늘었다. 같은 시각 기준 쿠웨이트는 확진자가 2만464명을 기록했다.

H건설 협력사 직원으로 쿠웨이트에서 근무 중인 B씨는 현지에서 노동자 91명(19일 기준, 한국인 2명)이 확진됐는데도 기간을 맞춰야 한다며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B씨에 따르면 회사는 3주간 형식적으로만 셧다운을 공지한 뒤 협력사에 지속해서 작업을 지시했다고 한다.

B씨는 “건물 봉쇄 외에 후속 조치가 미진하다”고 답답해했다. 현장에선 확진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으나 B씨를 비롯해 90% 이상 협력사 직원이 코로나19 검사도 받지 못한 상태다. 캠프 숙소들은 확진자 발생으로 코호트 격리 중인 빌딩과 뒤섞여 있다. B씨는 “수조원짜리 공사를 당장 중단하라는 게 아니라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라며 “이곳의 근로자 모두가 한 가정의 가장이며 사람”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방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들었지만 불가항력적인 사각지대가 발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셧다운은 발주처에서 결정하는 거라 발주처가 셧다운을 안 해주는데 우리가 나서서 할 수 없다”며 “코로나19 확산을 막아야 하니 최소한의 인력으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발주처에서 코로나19 현황 공개를 꺼리기 때문에 정보를 제공할 수 없는 측면도 있다고 부연했다.

해외 건설현장 근로자들은 국가라도 나서 달라며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해외건설지원과 관계자는 “수시로 기업 간담회를 진행하고 현지 대사관에서 방역 관리를 할 수 있도록 협의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보현 기자 bob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