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영 “작전 없는 게 작전” 박성현 “난 한방 노린다”

입력 2020-05-24 15:21
고진영(왼쪽)과 박성현이 24일 인천 중구 운서동 스카이72 골프앤리조트 클럽하우스 미디어센터에서 현대카드 슈퍼매치를 앞두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현대카드 제공

“작전을 짜지 않은 것이 작전입니다.” (고진영)

“찬스홀 카드를 써서라도 한 방을 노리겠습니다.” (박성현)

여자골프 세계 랭킹 1위 고진영(25)과 3위 박성현(27)은 필드로 들어서기 직전에야 승부의 무게감을 체감한 듯 필승 전략을 발설하지 않고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고진영과 박성현이 현대카드 슈퍼매치를 앞두고 승부에 임하는 각오를 밝히기 위해 먼저 방문한 24일 인천 중구 운서동 스카이72 골프앤리조트 클럽하우스 미디어센터.

두 살 어린 고진영은 미디어센터 입장을 앞둔 문 앞에서 박성현의 어깨에 기대어 밝게 웃었다. 박성현은 후배의 이런 친근감 표현이 마냥 싫지만은 않은 듯 특유의 침착한 얼굴에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단상에 나란히 앉아 말을 주고받을수록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한목소리로 “즐겁게 경기하고 싶다”면서도 전략을 노출하지 않으려는 듯 겸손한 말로 서로를 치켜세우며 은근하게 긴장감을 고조했다.

단상에서 고진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대결 제안을 받았을 때 과연 (박)성현 언니와 겨룰 실력이 될까 하는 고민을 했다. 성현 언니와 같은 매니지먼트사에 있으니 경기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고진영은 지난 2월에 박성현과 같은 매니지먼트사로 소속을 옮겨 함께 관리를 받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2020시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가 중단된 상황에서 성사된 이날 맞대결도 결국 같은 매니지먼트사 소속이어서 가능했다.

소속사에 먼저 터를 잡고 LPGA 투어 진출도 1년 빨랐던 박성현도 세계 골프계의 이목을 사로잡은 승부의 무게감을 마냥 가볍게 여길 수 없었다. 박성현은 “제안을 받고 많이 고민했다. 부담스러운 경기”라고 했다.

맞대결에 임하는 자신의 몸 상태를 말할 때도 두 선수의 숫자는 미묘하게 엇갈렸다. 최적의 상황과 비교한 현재의 컨디션을 묻는 질문에 먼저 대답한 박성현이 “60~70%”라고 말하자 고진영은 “100% 컨디션으로 우승한 적이 없던 것 같다”며 “50~60% 정도”라고 덧붙였다.

두 선수의 대결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하는 세계 프로스포츠에서 모든 종목을 통틀어 사실상 처음으로 성사된 톱랭커 간 승부다. 미국 골프채널은 “한국에서 록스타로 평가되는 두 선수의 대결은 대단한 이벤트”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갤러리를 유치하지 않은 이 경기에서 유일한 관전자인 기자들은 미디어센터를 가득 채워 열기를 고조했다. 아침만 해도 장대비를 쏟은 영종도의 하늘은 두 선수의 티샷을 앞두고 극적으로 구름을 걷어내고 강한 볕을 필드로 내비쳤다.

세계 여자골프를 호령하는 두 선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휴식기가 길었고 세계의 이목이 쏠린 부담감까지 더해지면서 이날 샷과 퍼트에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더욱이 고진영에게 이날 경기는 올해 처음으로 임하는 실전이다. 고진영은 “연습할 때 잘 맞아도 실전에서의 감각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오늘 승부를 바탕으로 경기력을 끌어올리겠다”고 다짐했다.

박성현은 “지난 시즌에 시달렸던 어깨 통증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휴식기로 나아졌다. 지난해보다 확실하게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다”며 “오늘만은 편하게 경기에 임하고 싶다”고 말했다.

경기는 각 홀마다 걸린 상금을 승리한 선수에게 지급하는 스킨스게임 형태로 진행된다. 추가 상금 1000만원을 획득할 수 있는 챌린지 홀이 승부에 흥미를 불어넣고 있다. 총상금 1억원은 두 선수가 각각 지정한 기부처에 코로나19 극복 기금으로 전달된다. 고진영은 밀알복지재단, 박성현은 서울대 어린이병원을 기부처로 택했다.

박성현은 어린이를, 고진영은 장애인을 바라봤다. 박성현은 “매년 기부해 온 곳을 기부처로 택했다. 어린이들이 병을 이겨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매년 내 생일마다 내 이름으로 서울대 어린이병원에 기부하는 분이 있다. 그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기부처를 결정한 배경을 설명했다.

고진영은 “장애우 분들이 코로나19 확산으로 일자리를 많이 잃게 됐다. 도움을 드리고 싶었다”며 “세상에는 힘든 생활하는 분들이 많다. 여러 고민 끝에 그동안 기부하지 못했던 곳으로 밀알복지재단을 택했다”고 말했다.

인천=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