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특검이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재판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집행유예 선고를 위해 만든 제도”라는 재항고이유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특검은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장인 정준영 서울고법 형사1부장판사에 대한 기피신청이 기각되자 대법원에 재항고한 상태다. 특검은 정 부장판사가 공개법정에서 언급한 미국 연방양형위원회의 통계자료를 따져 보니 오류가 있었다는 지적도 했다.
특검은 “정 부장판사가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예단을 갖고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위법한 재판을 진행했다”는 95페이지 분량 재항고이유서를 지난 18일 대법원에 제출했다. 특검은 정 부장판사가 준법감시제도 개선을 반복적으로 요구한 것은 집행유예 선고의 ‘노골적인 의사’라고 대법원에 호소했다. 이 부회장 측이 주장하지도 않은 준법감시제도 도입을 먼저 요구한 점, 미 연방양형위의 통계자료와 기업보호관찰 규정을 언급한 점 등은 ‘단순한 참고’가 아니라 ‘예단’이라는 것이다.
특검은 정 부장판사가 미국의 ‘기업보호관찰’ 요건을 먼저 언급하고 이 부회장으로부터 관련 답변을 제출받은 것을 ‘맞춤형·주문형 재판’이라고 비판했다. 법원이 피고인에게 양형 감경사유에 대한 암시를 준 뒤 집행유예 선고의 명분을 제공받은 셈이라는 것이다. 정 부장판사가 지난 1월 “2002년부터 2016년 사이 미국 연방법원은 무려 530개 기업에 대해 실효적 준법감시제도를 명령했다”고 했지만 해당 통계를 다시 점검한 결과는 513건이었으며 이중 양형 감경이 된 사례는 5건 뿐이었다고 특검은 강조했다.
이 부회장에게는 개전의 정이 없다는 것이 특검의 평가다. 대법원이 그의 적극적 뇌물공여를 인정했지만, 아직도 ‘겁박의 피해자’라는 주장으로 일관한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 측이 지난 1월 “피고인들과 삼성은 과거의 위법행위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며 제출한 의견서 속에도 모순이 있다고 특검은 지적했다. 이 부회장이 자신의 주장대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로부터 겁박을 받은 피해자라면 무엇을 반성한다는 것인지, 업무상횡령의 피해자인 삼성은 또 무엇을 반성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게 특검의 시각이다.
특검은 임우재 전 삼성전기 상임고문이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의 이혼 소송 당시 제기했던 항소심 재판장 기피신청을 대법원이 받아들인 사례도 재항고이유서에 적었다. 당시 대법원은 법관에게 실제 편파성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평균적 일반인으로서의 당사자 관점’에서 의심을 가질 만하면 기피가 인정된다고 했다.
이경원 구자창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