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과 돈내기 마작” 도쿄고검장 사의… 아베에 결정타

입력 2020-05-21 16:59 수정 2020-05-21 18:15
주간지 '슈칸분슌' 최신 호에 실린 구로카와 검사장의 내기 마작 의혹.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차기 검찰총장으로 밀던 검찰 고위간부가 돈내기 도박 의혹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이 간부를 총장으로 만들기 위한 맞춤형 검찰청법 개정안을 추진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아베 정권으로서는 결정적 타격을 맞은 것이다.

NHK, 아사히신문 등은 21일 검찰 내 2인자인 구로카와 히로무(63) 도쿄고검 검사장이 주변에 사임 의사를 밝혔고, 이르면 이날 내로 자진사퇴를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구로카와 검사장은 법무성 차원의 진상 조사에서 기자들과 돈내기 마작을 했다고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주간지 슌칸분슌의 보도에 따르면 구로카와 검사장은 지난 1일 평소 알고 지내던 산케이신문 기자의 도쿄 집에 방문해 오후 7시 반쯤부터 다음날 오전 2시까지 마작을 했다. 산케이신문 기자 2명과 아사히신문 전 검찰 담당 기자(현 경영기획실 근무) 1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구로카와 검사장은 지난 13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기자들과 자정까지 내기 마작을 즐긴 것으로 알려졌다. 슈칸뷴슌은 “구로카와는 접대 내기 도박 상습범”이라고 전했다.

일본 정부와 도쿄도는 지난달 긴급사태 선포 이후 국민들에게 외출을 자제하고 ‘3밀(밀폐공간·밀집공간·밀접접촉)’을 피할 것을 요청해 왔다. 특히 지난 1~2일은 도쿄도가 ‘스테이 홈 주간’으로 지정한 시기와 겹친다. 그런 시기에 고위 공직자가 밀폐된 공간에서 탁자를 둘러싼 채 내기 도박을 하고 있던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일본에서 돈이 걸린 마작은 불법이다.

슈칸분슌은 “판 돈이 아무리 적어도 내기 마작은 도박죄에 해당한다”고 꼬집었다. 또 구로카와 검사장이 내기 마작 후 언론사가 비용을 댄 고급 택시로 귀가한 점을 거론하며 “국가공무원 윤리규정상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구로카와 검사장은 아베 정권이 밀어붙이다 여론의 반발에 보류한 검찰청법 개정안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아베 총리는 지난 1월 각의(국무회의)에서 2월 7일 정년을 맞아 퇴직할 예정이었던 구로카와 검사장의 정년을 6개월 연장했다. 그가 아베 정권의 핵심 인사들과 가까운 인물이라 현 검찰총장이 오는 8월 임기를 마치면 그 후임으로 임명하기 위한 사전조치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 장악 음모’라는 비판이 야권을 중심으로 나오는 상황에서 아베 내각과 집권 자민당은 도리어 검찰청법 개정안 카드를 꺼냈다. 일반 검사의 정년을 현행 63세에서 65세로 연장하되, 차장검사·고검장 등 주요 간부들의 경우 63세가 됐을 때 내각과 법무상으로부터 정년 심사를 받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구로카와 검사장의 편법 정년 연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사후 입법’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좀처럼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들로서도 이례적인 반발이 이어지자 아베 정권은 결국 개정안 추진을 잠정 중단했다.

코로나19 대응도 못하면서 검찰 장악 법안 처리만 서두른다는 정서가 확산되며 이미 40%대 콘크리트 지지율이 깨진 아베 내각에게 ‘마작 스캔들’은 큰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구로카와 검사장 사임이 아베 정권의 인사 책임 논란으로 번질 경우 아베 총리의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전망이다.

제1 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아즈미 준 국회대책위원장은 “국민도, 국회도 구로카와 인사에 휘둘렸다”며 “이 사건의 결말은 구로카와가 ‘사임하겠다’고 말하는 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