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6월이었다. 당시 서른다섯 살이던 아동문학가 권정생(1937~2007)은 사인펜으로 동시를 쓰고 직접 색종이를 오려 붙여 표지와 본문을 꾸민 동시집을 직접 만들었다. 동시집 제목은 ‘산비둘기’. 그 시절 권정생은 경북 안동 일직교회 문간방에 살고 있었다. 그는 두 권을 만들어 한 권은 ‘기독교 교육’ 편집인이던 오소운 목사에게 선물했고, 나머지 한 권은 자신이 가졌다.
하지만 이 시집은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오 목사가 동시집에 실린 ‘매미’를 이듬해 ‘기독교 교육’에 소개하긴 했지만 시집이 나온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 50년이 흐른 최근에서야 ‘산비둘기’는 출판사 창비를 통해 정식 출간됐다. 이 시집을 읽을 독자들은 ‘강아지똥’이나 ‘몽실언니’ 같은 권정생의 대표작이 나오기 전에 그의 삶이 어땠는지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책에는 동시 25편이 실려 있다. 권정생은 젊은 시절부터 결핵을 앓았는데, 그의 삶을 지탱해준 버팀목은 어머니였던 것 같다. 책에는 어머니를 주제로 삼은 작품이 많이 등장한다.
어머니
어머니가 아프셔요
누워 계셔요
내 아플 때
어머니는 머리 짚어 주셨죠
어머니
나도 머리 짚어 드릴까요?
어머니가 빙그레
나를 보셔요
이렇게 두 손 펴고
살포시 얹지요
눈을 꼬옥 감으셔요
그리고 주무셔요
나도 눈 감고
기도드려요.
따뜻한 시선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작품, 어린이를 향한 진한 애정이 깃든 동시들도 주목할 만하다. 권정생은 ‘다람쥐’라는 시에 “도토리를 주워 와서/ 어느 게 더 예쁠까/ 견주어 보는/ 다람쥐 오뉘// 똑 똑/ 까서 먹고/ 도토리 눈”이라고 썼다. ‘달님’이라는 작품에선 “아픈 엄마 개가/ 먹다 남겨 둔/ 밥그릇을/ 달님이 지켜주고 있지요”라고 적었다.
권정생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서점가에는 ‘엄마 까투리’를 비롯해 고인의 많은 책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의 새로운 책을 앞으로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발문을 쓴 안상학 시인은 “이 동시집(‘산비둘기’)은 아마도 그의 미발표 저작 중 마지막으로 공개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