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랑 키스했다고…파키스탄 16·18살 자매, 사촌 총에 피살

입력 2020-05-21 15:48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18일(현지시간) 아와미노동자당 소속 여성운동가들이 명예살인 근절 시위를 벌이고 있다. 파키스탄에서는 인터넷 스타로 유명한 모델 찬딜 발로치가 도발적인 행동으로 가문의 영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최근 오빠에 의해 '명예살인'당하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AP뉴시스

파키스탄에서 16세, 18세 소녀 두 명이 남성으로부터 키스를 받는 동영상이 SNS에 퍼졌다는 이유로 사촌 총에 목숨을 잃었다. 가족과 마을 주민들은 명예살인을 전통이라고 주장하며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21일 BBC, 알자지라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14일 파키스탄 서북부 와지리스탄의 한 외딴 마을에서 무함마드 아슬랏이라는 남성이 10대 여자 사촌 자시마 비비와 사이다 비비를 총으로 쏴 살해했다.

경찰관 샤피울라 간다푸르는 “희생자들이 자매지간”이라고 밝혔다. CNN은 이들이 22세와 24라고도 보도했다.

사건이 일어난 와지리스탄은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사건이 벌어진 마을은 최근 수년간 아프간 무장 반군 탈레반의 지배를 받았다.

경찰 조사 결과 약 1년 전쯤 피해 여성들을 포함해 여학생 3명이 남성과 어울리다 키스하는 장면이 담긴 52초짜리 영상이 촬영됐는데 지난주 이 영상이 SNS상에 유포돼 논란이 일자 “가족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동영상을 촬영한 남성과 해당 동영상을 SNS상에 유포한 것으로 추정되는 남성을 체포했다. 또 가해자인 아버지와 삼촌을 증거를 은닉한 혐의로 함께 붙잡아 조사했다. 경찰은 추적 끝에 20일 총을 쏜 사촌 무함마드를 체포했다. 경찰에 따르면 영상 속 자매 이외 다른 여성의 생사는 아직 확인된 바 없다고 전했다.

파기스탄의 '명예살인' 반대 시위. EPA연합뉴스

파키스탄에서는 매년 1000여명이 부모의 허락 없이 결혼하거나 외도, 부적절한 의상 착용 등 가족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명예살인에 희생되고 있다. 피해자 대부분은 여성이다.

의회가 잇따르는 명예살인을 근절하기 위해 2016년 명예살인 처벌 강화법을 통과시켜 범행을 저지른 가해자에게 25년 이상의 징역형을 내리도록 했지만 명예살인은 전통을 이유로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한명오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