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히말라야로 간 까닭은…“좋아하는 데 이유가 있나요?”

입력 2020-05-21 14:49
히말라야 여행기 ‘히말라야를 걷는 여자’를 쓴 고영분씨. 그는 “세계 곳곳을 다녀봤는데 히말라야만큼 좋은 곳은 없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윤성호 기자

히말라야 곳곳을 트레킹하면서 지난 6년을 보낸 데다 필명은 신라 시대 장군 ‘거칠부’이니 목소리는 허스키하고 말투는 퉁명스러울 거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모두 빗나갔다.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만난 고영분(42)씨의 목소리는 맑았고 체구도 왜소했다.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겪은 어려움, 예컨대 음식이나 추위, 수면 부족이나 육체적인 피로 중 무엇이 힘들었는지 물었을 때도 그는 뜻밖의 답변을 내놓았다. “음식은 아무거나 잘 먹는 편이에요. 잠을 못 자서 힘들 때도 없었어요. 가장 힘든 건 추위예요. 제가 정말 추위를 많이 타거든요(웃음).”

고씨를 만난 건 그가 최근 발표한 신작 ‘히말라야를 걷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고씨는 한국인 최초로 네팔 히말라야의 동쪽부터 서쪽까지를 횡단한 인물이다. ‘히말라야를…’에는 2018년 네팔 지역 히말라야 1783㎞를 탐사한 기록이 담겨 있다. 히말라야 횡단 트레킹 여정을 담은 첫 책 ‘나는 계속 걷기로 했다’(2018)를 잇는 후속작이다.

히말라야 여행기 ‘히말라야를 걷는 여자’를 쓴 고영분씨. 윤성호 기자

‘거칠부’라는 필명은 온라인에서도 유명하다. 고씨는 2004년부터 운영한 블로그 ‘길을 찾는 즐거움’에서도 이 필명을 사용하고 있다. ‘거칠부’라는 이름을 쓰는 이유를 묻자 고씨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답했다. “중학교 국사 시간에 ‘거칠부’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는데 어감이 멋있더군요. PC통신을 하던 시절부터 이 이름을 사용했어요.”

고씨의 ‘히말라야 사랑’을 이해하려면 그가 산에 빠진 스토리부터 알아야 한다. 그의 인생이 달라진 건 스물한 살 때, 친구 권유로 PC통신 유니텔 산악 동호회 ‘산사랑’에 가입하면서였다. 산이 좋아서 동호회에서 하는 모든 산행에 참여했고, 3년쯤 활동하다가 ‘독립’해 홀로 산에 다니기 시작했다. 평일엔 대기업 직장인으로, 주말엔 산악인으로 살았다.

히말라야를 찾기 시작한 건 휴직계를 냈던 2014년부터다. 고씨는 “유럽 남미 아프리카에 있는 산들을 ‘들쑤시고’ 다니다가 마지막에 찾게 된 곳이 히말라야”라며 “사람들은 히말라야라고 하면 설산(雪山)부터 떠올리는데, 그곳엔 다양한 풍경이 있다”고 말했다. “왜 히말라야에 빠졌는지 설명하긴 힘들어요. 좋아하는 데 이유가 있겠습니까. 어떤 이유 때문에 좋아한다면, 그 이유 탓에 싫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때부터 고씨는 1년의 절반 가까이 ‘히말라야를 걷는 여자’로 살아가고 있다. 회사는 2017년에 그만두었다. 그가 지금까지 히말라야 곳곳을 걸어 다닌 거리를 합하면 6000㎞가 넘는다. 경비는 직장 생활을 하던 시절 저축해놓은 돈으로 충당하고 있다.

“인생의 전반기, 후반기가 있다면 마흔 살이 그 중간쯤이라고 생각했어요. 오래전부터 전반기에는 학교나 직장 다니면서 남들처럼 살았으니, 후반기에는 내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트레킹을 한 뒤 책까지 펴내는 이유는 “걷기의 마무리는 글쓰기”라고 여겨서다. 고씨는 “여행을 마친 뒤 글을 쓰면 다시 한번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며 “글을 쓰면서 스스로 치유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많다”고 했다. 히말라야 곳곳을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고씨는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답했다. “트레킹을 처음 시작할 때는 머릿속이 시끄러워요. 아주 오래전 기억까지 다 떠올리게 되죠.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생각이 사라져요. ‘오늘은 얼마나 걸을까’ ‘점심땐 뭘 먹을까’ 같은 생각만 하게 돼요(웃음).”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