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청원을 둘러싸고 허위사실 유포, 여론 동원, 세 대결 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온갖 청원들이 쏟아지는 국민청원이 여론의 분출구가 되고 있지만, 가짜 청원으로 행정력을 낭비한다는 지적도 있다. 청와대는 “가짜 신고가 들어온다고 119를 없앨 순 없다”며 국민청원의 장점을 부각하고 있지만 고심도 깊어지는 눈치다.
청와대는 지난 20일에도 “민식이법 개정을 청원한다”는 국민청원에 답변했다. 지난 3월 25일 개정 시행된 특정범죄 가중처벌에 관한 법률(일명 민식이법) 이후 과잉입법이라는 청원이었다.
답변자로 나선 김계조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차관)은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기준 이하의 속도를 준수하더라도 사고가 나면 무조건 형사처벌 대상이라는 불안도 있다”며 “하지만 현행법에 어린이안전의무 위반을 규정하고 있고, 기존 판례에서도 운전자가 교통사고를 예견할 수 없었거나 사고 발생을 피할 수 없었던 상황인 경우에는 과실이 없다고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현행법과 기존 판례를 감안하면 무조건 형사처벌이라는 주장은 다소 과한 우려”라고 했다.
해당 청원에는 총 35만 4857명이 동의했다. 민식이법 제정도 국민청원을 통한 여론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민식이법 개정도 국민청원으로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민식이법을 폐지하라’는 청원 등 민식이법으로 검색되는 청원만 31건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온갖 청원이 쏟아진다. 20일 기준으로 만료된 청원만 44만2800여건이다. 30일 안에 동의자가 20만명이 넘어 정부와 청와대 책임자가 답변에 나선 청원도 164개다. 역대 최다 동의를 받은 청원은 270만명이 참여한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였다. 이처럼 사회적 공분과 국민 여론을 즉각적으로 전달하는 통로로 순기능도 적지 않다.
하지만 수많은 국민이 동의한 청원이 새빨간 거짓말이거나 허위 사실로 밝혀지는 일도 있었다. 전날 청와대는 ‘25개월 딸 성폭행한 초등생 처벌’ 국민 청원에 대해 “해당 청원은 허위사실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해당 청원은 53만 3883명이나 동의했지만, 경찰이 수사과정에서 가해 아동이 실존하지 않고, 피해 아동의 병원 진료 내역이 사실과 다른 점을 확인했다.
2018년 4월에도 여아의 나체 사진과 함께 “어른들에게 성적 학대와 조롱을 당하고 있는 아이들을 구해달라”는 청원이 있었지만,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니었다. 당시 답변자로 나선 민갑룡 경찰청장(당시 경찰청 차장)은 “국내에서 발생한 아동 성폭력 사건이 아니라 중국에서 제작 유포된 아동 음란물을 캡쳐해 게시한 사건”이라고 밝혔다. 2018년 11월에도 “국내 농장에서 반려견 도살을 멈추게 해달라”며 다친 개 영상이 올라왔다. 하지만 해당 영상도 2016년 태국의 한 방송프로그램에 소개된 영상으로 개가 교통사고를 당한 장면이었다.
때로는 정치적 세 대결의 장이 되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문재인 대통령을 응원한다’는 청원과 ‘문 대통령 탄핵을 촉구한다’는 청원이 각각 150만명, 146만명의 동의를 받았다. 청와대가 같은 날 탄핵 청원에 대해서는 “(탄핵) 절차의 개시 여부는 국회의 권한이라 답변이 어려운 점, 국민 여러분들의 양해를 구한다”고 했고, 응원 청원에 대해서는 “불안하고 불편한 상황에서도 정부를 믿고 지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답변하는 일이 벌어졌다. 청원 동의자 수가 20만명이 넘으면 답변을 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20만명의 동의를 받지 못했지만, 황당한 청원도 계속된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정치 비평 중단 반대”나 “투표실명제를 해 달라”는 청원도 있었다.
청와대는 국민청원은 국민의 소통의 장인만큼, 국민의 자발적인 협조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2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허위 청원으로) 행정력 낭비가 있기 때문에 국민의 주의와 부탁을 드리는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도 허위 청원에 대해 고발이나 등의 방법보다 시민들의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