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소비 둔화 국면에서 온라인 쇼핑 등 ‘언택트(비대면) 소비’가 내수 활성화 대안으로 주목받았지만 구세주는 되지 못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들불처럼 번진 올해 1분기 카드사 외상판매는 사상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20일 발표한 올해 1분기 가계신용 중 판매신용은 89조5745억원으로 지난해 4분기보다 6조1446억원 줄며 2003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크게 감소했다.
판매신용은 소비자가 카드나 할부금융을 이용해 물건값을 결제한 뒤 해당 금액을 실제 납부하기 전까지 금융사가 대신 메워주는 일종의 외상이다. 백화점이나 자동차회사 같은 판매자가 직접 받아주는 외상도 포함하지만 비중은 대개 1%를 밑돈다.
판매신용 감소는 주로 카드나 할부금융을 이용한 소비가 줄었음을 뜻한다. 올해 1분기 판매신용 중 카드사를 비롯한 여신전문회사 몫은 같은 기간 6조725억원 줄어 역시 사상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전 분기 대비 판매신용 감소액이 6조원대를 기록한 건 17년 전 카드대란 이후 처음이다.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으로 신용불량자가 급증한 2003년 판매신용은 1분기 5조3546억원 축소된 데 이어 2·3분기 2개월 연속 6조원대(각각 6조647억원, 6조1307억원) 감소폭을 기록했다.
통상 연말로 갈수록 소비가 몰리는 만큼 판매신용은 대개 4분기에 상대적으로 많이 늘고 이듬해 1분기에는 기저효과 등으로 증가폭이 축소되거나 소폭 감소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올해 1분기는 그런 경향에서 크게 벗어난 경우다.
1분기 기준 전년 동기 대비 판매신용 증가액은 올해 1조3966억원에 그쳐 2013년(2886억원) 이후 7년 만에 가장 적었다. 7조1314억원 늘어난 지난해 1분기까지 최근 4년간 1분기 기준 판매신용은 매년 6조~8조여원씩 몸집을 불려왔다.
올해 1분기 판매신용 급감은 국내 코로나19 확산세가 본격화한 2월 이후 모임이나 쇼핑 등 소비로 이어지는 외부 활동을 극도로 줄인 데 따른 결과다. 사람을 만나거나 물건을 사러 나가지 않으니 카드를 긁을 일도 자연히 줄어든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가계동향 분석 보고서를 보면 대금 납부 전까지 판매신용으로 잡히는 카드 승인액은 올해 3월 4.3% 줄며 29개월 만에 감소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더 큰 폭인 5.7% 줄었다. 카드 승인액이 2개월 연속 감소하기는 2004년 5월 이후 처음이다.
이런 동향은 온라인을 활용한 비대면 소비가 일상적 대면 소비 감소세를 상쇄하지 못함을 시사한다. 지난 2, 3월 온라인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6.5%, 23.6% 증가한 데 이어 지난달에도 19.9% 늘며 높은 증가율을 이어갔다.
직장인 김모(35·여)씨는 “인터넷 구매가 늘긴 했지만 대부분 생필품이나 직접 입어보지 않아도 되는 일부 옷가지를 사는 정도”라며 “친구들끼리 모이거나 가족끼리 외출을 나가서 쓰는 돈에 비하면 결코 크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달 백화점 매출은 14.7% 줄어 지난해 12월부터 5개월 연속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대형마트를 포함한 할인점 매출은 0.9% 감소하며 3개월 연속 줄었다. 백화점과 할인점 매출액이 3개월 연속 동반 하락하기는 2012년 6월 이후 처음이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