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정의 의붓아들이 타살에 의해 숨졌을 것이라는 법의학자의 진술이 나왔다.
20일 광주고등법원 제주제1형사부(왕정옥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고유정 항소심 2차 공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이정빈 서울대 의과대학 명예교수는 사망한 의붓아들의 얼굴 부위에 울혈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 타살의 가능성으로 해석된다고 진술했다.
이 교수는 “피해아동의 경우처럼 흉부압박에 의해 비구폐쇄로 숨졌을 경우 얼굴 부위에 정맥의 피가 몰리며 울혈이 나타나는데 피해아동에게서는 울혈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것은 호흡이 멈춘 이후에도 혈액순환이 일정시간 이뤄지면서, 눌렸을 때 생겼을 울혈이 빠진 것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다”며 “호흡이 정지된 이후에도 심장이 멈출 때까지 일정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것은 누군가 피해 아동의 숨이 멈추자 숨진 것으로 생각해 손을 뗐지만, 아이가 완전히 숨질 때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존재했던 것”이라며 살인의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만일 피해 아동이 우연히, 살인을 의도하지 않은 무언가를 눌려 사망한 것이라면, 아이의 숨이 멈췄을 때까지만 외력이 작동하고 이후 힘을 걷혔을 것이라고 가정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아이가 자고 있던 아버지의 몸에 눌려 사망했을 가능성은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라고도 덧붙였다.
이 교수는 “4살 반 정도의 나이라면 어느 정도의 압박을 스스로 피할 수 있다”면서 “아버지가 눌렀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어렵다고 답변하겠다. 되지 않는 상황을 물어보면 안 된다”고 일축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전남편 살해, 사체 손괴, 사체 은닉과 의붓아들 살해 혐의로 기소된 고유정에 대해 전남편에 대한 혐의만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의붓아들의 사망에 여러 우연적인 요소가 개입돼 타살로 의심해볼 수 있다면서도 아이와 함께 자고 있던 아버지의 눌림에 의한 사망을 완전 배제할 수 없어 의붓아들 살해 혐의는 적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날 이 교수의 진술은 피해아동 사망의 직접 이유인 ‘외력’이 아이의 호흡과 심장이 정지하는 개별 결과의 사이에 멈춰진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타살에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이번 공판에서 타살의 주체가 고유정임을 입증하는 새로운 증거는 제시되지 못 했다.
고유정은 지난해 5월 25일 오후 8시10분에서 9시50분 사이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서 전남편 강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버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고유정은 지난해 3월 2일 오전 4~6시께 충북 청주시 자택에서 아버지와 함께 잠을 자고 있던 의붓아들의 등 뒤로 올라타 손으로 피해자의 얼굴이 침대에 파묻히도록 머리방향을 돌리고 뒤통수 부위를 10분 가량 강하게 눌러 살해한 혐의로도 기소됐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