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중국 편향성’을 개선하지 않으면 자금 지원을 끊겠다는 미국의 엄포에도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9일(현지시간) 중국과 러시아, 유럽연합(EU)이 WHO 위협에 열을 올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일제히 꾸짖으면서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보도했다.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시도가 도리어 미국의 국제사회 영향력을 약화시키며 중국의 입지만 키워주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EU 행정부 수반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날 이틀째 이어진 WHO 화상 총회에서 팬데믹에 맞선 국제 협력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가장 큰 용기는 하나의 팀으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외신들은 이 발언을 미국을 겨냥한 비판으로 해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WHO 사무총장에게 최후통첩성 서한을 보내 30일내 ‘실질적 개선’을 이뤄내지 못하면 자금 지원 중단은 물론이고 회원국 탈퇴까지 검토하겠다고 협박한 일을 우회적으로 질책한 발언이라는 것이다.
EU 집행위 대변인도 같은 날 “지금은 연대해야 할 때이지 비난으로 다자간 협력을 약화할 때가 아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EU는 코로나19 확산 방지 및 완화를 위한 WHO의 노력을 지지한다. 이 같은 노력을 지원하고자 이미 추가적인 자금도 제공했다”며 WHO에 힘을 실어줬다.
노아 바르킨 독일 마셜재단 선임연구원은 포린폴리시 기고문을 통해 “미국이 포스트 팬데믹 냉전에서 유럽을 잃고 있다”고 꼬집었다.
미국이 적성국으로 간주하는 중국, 러시아, 북한도 미국 비난에 가세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미국은 자국 방역실패에 대한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고 있다”며 “WHO 지원을 끊는 행위는 일방주의적인 것으로 국제의무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하원의원들과의 화상회의에서 미국을 겨냥해 “한 국가가 자신들의 정치적·지정학적 이익을 위해 국제기구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행위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북한도 WHO 총회에 보낸 입장문을 통해 ‘미국의 무책임함’를 꼬집으며 중국 편을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불참 속에서도 WHO 회원국들은 이번 총회에서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의 보편적이고 공정한 유통을 약속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다만 회원국들은 코로나19의 기원 및 WHO의 팬데믹 대처 과정 전반에 대한 ‘공정하고 독립적인 조사’ 실시에 합의했다. 특정 국가를 지목하지는 않았으나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조치로, ‘중국 책임론’을 주장해온 미국 측 입장이 반영된 것이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