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군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후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을 빌미로 국방예산의 대규모 증액을 추진하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0일 보도했다.
SCMP에 따르면 중국 군부는 지난해 국방예산 증가율인 7.5% 또는 그 이상의 증액을 원하고 있다고 소식통들이 전했다. 한 소식통은 군부가 원하는 국방예산 증가율이 9% 수준이라고 전했다.
올해 중국의 국방비 규모는 오는 22일부터 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군사전문가인 쑹중핑은 “중국 인민해방군은 미국 등으로부터 제기되는 안보 위협이 증가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군 현대화와 전투태세 훈련을 뒷받침할 예산 증액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전인대에서는 1조1800억 위안(약 204조원) 규모의 국방예산이 발표됐지만,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지난해 중국의 국방비 지출을 2610억 달러(약 320조원)로 추정했다. 이는 미국의 국방비 지출 규모인 7320억 달러(약 890조원)의 3분의 1을 넘는 수준이다.
중국군은 미·중 무역전쟁과 기술전쟁에 이어 최근 코로나19 책임론 갈등까지 불거지며 미국의 위협이 고조되는 만큼 국방예산 증액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올해 들어 미군 폭격기는 남중국해, 동중국해 등을 40여 차례 비행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미국 해군은 지난 한 해 남중국해에서 총 8차례 ‘항행의 자유’ 작전을 펼쳤으나 올해는 벌써 4차례나 같은 작전을 강행했다.
대만 군사 전문가인 루리시는 “미국과 중국의 상호 불신은 1970년 국교 수립 이후 최악의 수준이지만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했다.
중국 군부는 미국과의 갈등 외에 대만 독립주의 세력, 티베트와 신장위구르 지역 분리주의 세력의 위협 등을 국방예산 증액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만과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대만에 F-16 전투기 판매 등을 승인해 중국 군부를 자극하고 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2016년 집권 후 중국과 계속 충돌을 빚어왔으며, 양회 개막을 이틀 앞두고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해 중국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차이 총통은 이날 타이베이빈관 야외무대에서 가진 취임 연설에서 “우리는 베이징 당국이 일국양제를 앞세워 대만을 왜소화함으로써 대만해협의 현 상태를 파괴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이는 우리의 굳건한 원칙”이라고 각을 세웠다.
알렉산더 황 대만 담강대학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중국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제 회복에 주력해야 하기 때문에 당장 대만과 군사적 충돌이 빚어질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중국은 차이잉원 정부에 위협을 가하기 위해 더 많은 군사 작전을 하는 등 무력 공세를 계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50년까지 세계 최강 군대 건설이라는 계획을 밝힌 중국은 2035년까지 항모 4척 체제를 갖출 계획이며, 055형 유도미사일 구축함, 075형 상륙강습함 등 최신 군함 건조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군부는 코로나19 방역에서 인민해방군이 투입해 중요한 역할을 했고, 모병 확대를 통한 청년실업 해결 등을 위해서도 국방예산 증액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국방예산 증가폭에 대해서는 중국 군사전문가들도 예측이 엇갈리고 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가 군사전문가 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명은 약 3% 증액을 예상했고, 1명은 5~6% 증가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2명은 오히려 감소 가능성이 있다고 봤고, 3명은 예측이 어렵다고 했다.
군사전문가 리제는 “지난해만큼은 아니겠지만 여전히 소폭 증가할 것”이라며 “일부 낙관적 국내총생산(GDP) 성장전망치가 2~3%인 만큼 국방예산도 비슷하게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웨이둥쉬는 “중국의 현 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국방예산 증가율은 5% 미만이 맞을 것”이라고 했다.
쑹중핑은 “미국 등의 군사적 압박을 고려할 때 중국은 군사 분쟁에 대비해야 한다”면서 “국방예산 증가는 지난해 수준을 유지해야 하고, 소폭 둔화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