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냐 정책지원이냐…‘대출 과속’에 속타는 은행

입력 2020-05-19 17:41
“정부·여론 외면하기 힘들어”
‘수익성 추구’ 시티·SC제일은행은 비교적 느긋


‘리스크(위험) 관리냐 정책지원이냐’. 시중은행권이 요즘 딜레마에 빠진 모양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대출 증가 속도가 예년보다 가팔라지면서다. 기업은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대출을 늘리고 있고, 소득이 줄어든 가계도 대출 의존도를 높인 탓이다.

은행으로서는 재무건전성을 해칠 수 있는 ‘대출 과속’을 경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현실은 녹록치 않은 분위기다. 리스크도 중요한데, 코로나19 금융 지원을 독려하는 정부 방침을 무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1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4월 시중은행의 총대출 잔액은 1844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기업대출 잔액은 929조2000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27조9000억원 늘었다.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9년 6월 이후 최대 증가폭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코로나19에 따른 경기 불확실성이 짙어지면서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도성 대출이 크게 늘었고, 한도를 소진하는 기업이 많아졌다”면서 “예년과 비교할 때 대출액과 증가 속도가 부쩍 늘어났다”고 말했다.

급격한 대출 증가는 재무 건전성 지표인 자기자본 비율에도 영향을 미친다. 신한·KB·하나·우리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의 3월말 현재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평균 자기자본 비율은 15.4%다. 2015년(14.9%) 이후 5년 만에 최저치다.

은행의 대출 증가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의 ‘금융기관 대출행태 서베이’에 따르면 2분기 은행들의 대출수요지수 전망은 24로 전분기(5)보다 부쩍 많아졌다. 대기업대출의 경우 1분기 -7에서 2분기 10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덩달아 은행 대출의 2분기 신용위험 지수 전망도 38로 최근 3년 내 최고치를 기록했다. 신용위험지수가 높을수록 대출이 부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시중은행들로선 적극적인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지만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다. 금융당국과 여론의 눈치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의 경우, 최근 예대율 등 각종 규제 완화를 통해 은행의 대출 확대를 독려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씨티은행과 SC제일은행 등 외국계 은행의 여건은 국내 은행과 사뭇 대조적이다. 정부정책 지원보다는 수익성 추구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씨티은행의 경우, BSI 비율은 18.4%로 업계 최고다. 정부는 이들 외국계은행이 1차 소상공인 초저금리 이차보전 대출에 소극적으로 대응하자, 2차 대출 프로그램에서 대출한도를 대폭 삭감하기도 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