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명 남고 8명 잘렸다…아시아나KO 노사 악몽의 3개월

입력 2020-05-18 18:20 수정 2020-05-18 20:14
서울=연합뉴스) 천경환 기자 =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청 관계자들이 종로구 금호 아시아나항공 본사 앞에 설치된 금호 아시아나항공 하청업체 금호 아시아나KO의 천막을 철거하고 있다. 금호 아시아나항공 항공기 청소 업무를 해온 금호 아시아나KO 노동자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의한 경영의 어려움을 이유로 이달부터 무기한 무급휴직을 통보받았고 이곳에서 천막시위를 벌여 왔다.

“무급휴직을 끝까지 반대한 8명을 받아주면 동의한 330명은 뭐가 되나요? 저들처럼 다 들고 일어나면 전부 해고되거나 회사가 파산하겠죠.”(한국노총 아시아나KO 지부장)

“회사가 1노조와만 협상해 만든 정리해고 기준이 정당성이 있습니까? ‘쉬운 해고’에 끝까지 싸울 겁니다.”(민주노총 아시아나KO지부장)

아시아나항공 하청업체인 아시아나KO의 ‘부당해고 논란’의 이면에는 평행선을 달리는 두 노조 간 갈등이 있다. 무급휴직에 동의하지 않은 민주노총 조합원 8명은 지난 11일 해고된 후 18일 강제 철거될 때까지 천막 농성에 나섰다. 이들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어떤 과정을 거쳐 거리에 나서게 됐을까.

회사가 전원 고용 유지에 실패한 데에는 감염병 여파 외에도 노노 갈등과 정부 지원 사각지대 문제, 저성과자 해고 문제가 자리잡고 있었다. 향후 다른 업계도 코로나19 여파 속도에 따라 이런 문제를 겪을 위험이 있다.

5년 전 설립돼 아시아나항공의 항공기 청소 업무를 독점으로 맡아 온 아시아나KO는 매출 규모 200억원, 직원 수 500명로 재무 상태가 안정적인 회사였다. 그러나 감염병으로 공항이 셧다운되자 매출이 3월은 절반으로, 지난달엔 70% 떨어졌다. 회사 측은 3월 초 노조와 유급휴직에 합의했다가 중순 무급휴직으로 번복했다.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주원 아시아나KO 이사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으로부터 ‘회사에 체불 임금이 있어 지급 대상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는 답을 받았다”며 “회사가 임금을 선지급하고 3개월 후에야 돈이 나오는데 나중에 탈락되면 회사가 파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급 휴직에 반대하던 복수노조의 의견이 갈라지기 시작한 건 직원 330명이 속한 한국노총이 회사 측과 교섭에 나서면서다. 이정상 한국노총 지부장은 “노무사를 통해 우리 회사가 코로나19 여파로 정리해고가 가능한 상황인 걸 확인받았다”며 “자칫하면 직원이 모두 해고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협상에 나섰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소속 직원 32명 중 22명은 무급휴직에 동의했지만 간부진을 포함한 나머지 10명은 유급휴직을 고집했다. 김정남 민주노총 아시아나KO지부장은 “결국 지원금은 신청도 안 한 것”이라며 “아시아나항공이 HDC현대산업개발에 합병되기 전에 구조조정을 해야 할 것 같으니 이번 기회에 대량 해고하려는 의도”라고 했다.

회사는 한국노총과만 교섭을 진행해 무급휴직이나 희망퇴직에 동의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는 안을 24일 내놨다. 이후 4차례의 노사 협의 끝에 인사고과, 근속연수 등을 고려한 기준을 만들어 점수가 높은 근로자는 비동의자라도 해고하지 않기로 했다. 그 결과 회사는 150여명만 출근하도록 하고 130명은 희망퇴직, 200명은 무급 휴직 처리하기로 했다. 민주노총 소속 비동의자 10명의 경우 2명은 점수를 높게 받아 계속 일하게 됐고 나머지 8명은 해고가 결정됐다.

해고가 최종 결정된 지난달 9일부터 정식 해고된 지난 11일까지 두 노조 간 갈등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민주노총은 노사 합의문을 두고 “투명하지 않은 인사고과 점수로 해고하는 건 전형적인 부당해고”라며 한국노총을 ‘어용 노조’라고 공격했다. 한국노총도 ‘우리 조합은 200명이 동의했는데, 8명과 타협하면 다 들고 일어나겠다’며 사측을 압박했다. 회사는 ‘타협하지 않겠다’는 공지문을 회사에 붙이기에 나섰다.

(서울=연합뉴스) 천경환 기자 =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금호 아시아나항공 본사 앞에 설치된 금호 아시아나항공 하청업체 금호 아시아나KO의 천막에서 노조원이 종로구청 관계자들이 천막을 철거하자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금호 아시아나항공 항공기 청소 업무를 해온 금호 아시아나KO 노동자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의한 경영의 어려움을 이유로 이달부터 무기한 무급휴직을 통보받았다

전문가들은 노노 갈등, 정부 지원 사각지대 문제로 코로나19로부터 해고를 막지 못한 사례라고 봤다. 노광표 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고용유지지원금 신청을 보완하거나 순환 휴직 등 최대한 해고가 막는 방향으로 전략을 짤 수 있었는데 노사 간 기 싸움, 갈등을 하느라 놓친 것”이라며 “또 회사가 고과 기준에 따라 해고 여부를 결정하는 건 추후 법적 분쟁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당시엔 신속지원프로그램 등 임금을 선 지급하는 제도가 나오지 않았을 때라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였던 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가 완화되면 다 필요한 인력이기 때문에 회사는 선지급할 임금까지 지원받는 방안을 찾는 등 최대한의 고용유지 노력을 했어야했는데, 그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노조 측은 정부 지원이 부실했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이 지부장은 “회사가 망하기 직전인데 남부지청 공무원이 ‘체불임금이 있으면 고용유지지원금을 못 받을 수도 있다’는 어조로 말해 이 사태까지 온 건데 이제 와선 ‘체불임금과 지원과는 상관이 없다’며 발을 빼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서둘러 양대 노총 간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한 합의를 이끌어내야 고용 유지 정책이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노 소장은 “아시아나항공이나 이스타항공도 각각 휴업수당, 대량 정리해고 기준을 두고 노조 간 갈등이 빚어지는 모습”이라며 “20일 열리는 정부와 양대 노총 간의 사회적 대화에서 의미있는 결과가 도출돼야 대량 해고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