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복지 확대 ‘기금’ 큰 역할
그러나 주요 기금들 한계 도달
재정 투입, 보험료율 인상 직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기금의 취약성이 노출되고 있다. 현 정부의 복지 확대에 기금은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해왔다. 막대한 재원의 일부를 책임진 것이다. 기금은 조성 목적에 부합하면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가입자가 낸 돈 보다 지출이 커지면 문제가 생긴다. 현 정부 들어 일자리, 건강 등 주요 사회보장성 기금은 2018년을 기점으로 적자로 돌아섰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로 기금이 떠안을 부담은 훨씬 커질 전망이다.
현 정부의 기금 활용은 예고 된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5개년 계획에서 공약 이행에 약 178조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재원 조달 방법은 초과 세수(60조원), 고소득자·초대기업 증세(24조원), 재정 지출 절감(60조원), 여유 기금 활용(35조2000억원) 등이다. 이 중 여유 기금 활용 규모는 최종 선거 공약집(15조원) 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이후 약 3년 동안 부동산 정책은 주택도시기금, 탈(脫)원전은 전력기금 등이 담당했다. 이 기금들은 지출을 늘릴 만큼 여유가 있다. 문제는 사회보장성 기금이다. 많은 일자리 정책을 고용보험기금이 뒷받침했다. 청년추가고용장려금, 구직급여(실업급여) 등의 확대가 이뤄졌으며, 기금 조성 취지와 다소 동떨어지는 모성보호급여 지원도 고용보험기금이 떠맡고 있다.
고용보험기금은 2018년 -8082억원을 기록하며 수입 대비 지출이 큰 ‘적자’로 돌아섰으며, 지난해에는 약 2조원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기금은 고갈을 막기 위해 매해 지출액의 1~2배를 적립해야 하는데, 이미 주요 계정(고용안정, 실업 급여)은 법정 적립배율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상황은 더 심각하다. 실업 대란으로 올해 고용보험기금의 지출은 급증할 예정이다. 정부는 단계적 전 국민 고용보험 추진도 밝힌 상태다. 재정 건전성은 훨씬 악화될 수 있다.
다른 사회보장성 기금의 사정도 좋지 않다. ‘문재인 케어’를 담당하는 건강보험은 2018년 -1778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국회예산정책처 전망에 따르면 향후 적자 상태는 계속 유지된다. 고령화와 정책 확대로 노인장기요양보험도 2016년 -432억원으로 적자가 시작된 후 그 폭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정부가 기금을 목적에 맞게 활용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경기 부진과 증세의 어려움 등으로 복지 확대에 따른 돈을 구하기 쉽지 않자 기금에서 많은 재원을 꺼내쓰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결국 기금 적자를 메우기 위해 다시 나랏돈 투입이 필요하고,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현 정부는 증세가 어렵고, 세수는 빠듯하다 보니 기금 사업 중심으로 사회안전망을 확대했다”며 “기금들이 한계에 도달해 세금 인상 보다 어려운 보험료율 인상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