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화웨이 제재”에 中 “퀄컴 애플에 보복”…기술 냉전 시작됐다

입력 2020-05-18 17:02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AP뉴시스

미국이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의 반도체 조달 루트를 차단하는 고강도 제재를 발표하면서 미·중 간 기술 전쟁이 격화되고 있다.

중국은 연일 강력한 보복을 경고하고 있고, 퀄컴, 시스코, 애플, 보잉 등 보복 대상 기업도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미국의 화웨이 제재가 중국 업체를 세계 공급체인에서 배제하려는 의도라며 미·중 간에 장기적인 기술 냉전이 시작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18일 ‘화웨이 제재가 중국과 미국을 기술 냉전으로 이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미국의 조치는 중국에서 역풍을 초래했고, 핵심 기술에서 전면적인 ‘탈 미국화’를 가속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졌다”며 “이 과정에서 퀄컴과 애플 등 미국 기업들이 주요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글로벌타임스는 “미국의 새로운 제재가 나오기 하루 전에 대만 TSMC는 미국에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면서 “TSMC가 화웨이의 반도체칩 생산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의 주요 공급자임을 감안할 때, 이번 제재는 중국 업체를 세계 공급체인에서 배제하려는 미국 측의 구상”이라고 지적했다.

익명의 정부 소식통은 “중국은 사이버 보안법과 반독점법 등에 근거해 퀄컴, 시스코, 애플 등 미국 회사를 조사하고, 중국의 블랙리스트에 포함시키거나 보잉 여객기 구매를 중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중국 싱크탱크 차이나랩스 설립자인 팡싱둥은 “미·중 무역전쟁은 일시 ‘휴전’했지만, 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의 제재는 계속될 것이고, 장기적으로 미·중의 대치 국면은 서로 피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에릭 쉬 화웨이 순환회장은 “미국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고 시장 규칙을 바꾸면 판도라 상자를 여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화웨이 한 회사만 파괴되는 게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에 재앙적인 피해를 입힐 것”이라고 지적했다.

화웨이는 지난 16일 웨이보에 “승리 외에 이미 우리가 나아갈 길은 없다”는 글과 함께 2차 세계대전 때 한 전투기가 총탄에 구멍이 뚫린 채 끝까지 비행해 귀환하는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화웨이가 미국의 제재 조치에 반발해 웨이보 계정이 올린 2차대전 당시 전투기 사진.웨이보캡처

중국 상무부는 전날 대변인 성명을 통해 “중국은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수출 규제 조치를 단호히 반대한다”며 “이는 외국 특정 기업에 대한 억압이며 시장 원칙과 공정 경쟁을 파괴하는 행위로 모든 필요한 조처를 통해 중국 기업의 합법적인 권익을 단호히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외교부도 전날 성명을 통해 “중국은 자국 기업의 합법적 권리를 결연히 지킬 것”이라며 “미국 측은 중국 기업에 대한 불합리한 압력을 즉각 중단하길 촉구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기술 공세가 거세지자 중국은 자국의 핵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SMIC에 거액의 투자금을 몰아주며 반도체 자급 의지를 드러냈다.

SMIC는 최근 공고를 내고 국가집적회로(IC)산업투자펀드(국가대기금)와 상하이직접회로펀드로부터 총 22억5000만 달러(약 2조7700억원)의 투자를 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두 곳은 모두 정부 주도의 펀드다.

미 상무부는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의 특정 소프트웨어와 기술의 직접적 결과물인 반도체를 화웨이가 취득하는 것을 전략적으로 겨냥한” 수출 규정 개정에 나섰다고 밝혔다.

미국은 그동안 미국에서 생산된 반도체를 화웨이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규제했지만, 개정 규정에 따르면 미국의 기술을 활용하는 해외 기업도 화웨이에 특정 반도체를 공급하려면 미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번 조치는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로 화웨이의 핵심 공급자인 대만 TSMC를 겨냥해 화웨이에 대한 전 세계의 반도체 공급을 차단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의 조치에 발맞춰 TSMC가 화웨이의 신규 주문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지만 TSMC측은 단순히 소문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연합뉴스

갖가지 이슈로 중국에 공세를 펴고 있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홍콩 내 자국 언론인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간섭을 경고하고 나섰다.

폼페이오 장관은 17일(현지시간) 성명에서 홍콩에 있는 미국 언론인은 “선전집단이 아니라 자유 언론의 일원”이라며 “홍콩의 자치와 자유에 영향을 주는 어떤 결정도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에 대한 미국의 평가에 반드시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은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 유력 언론사 베이징 특파원을 잇달아 추방했고, 미국도 자국 내 중국 관영 매체의 중국인 직원 수 제한에 이어 비자발급 기준도 강화키로 하는 등 서로 보복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은 또 자국 해군 알레이버크급 구축함인 라파엘 펠라타함(DDG-115)을 최근 상하이에서 115해리(약 213㎞) 떨어진 동중국해까지 접근시키는 등 중국 연안에서 군사적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

앞서 미 해군 구축함인 맥캠벨함(DDG-85)도 지난달 17일 산둥성 웨이하이에서 불과 42해리(약 78㎞) 떨어진 해상까지 접근하는 등 한 달 새 두 번이나 미 군함이 중국 연안에 바짝 다가섰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