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목의 성경 현장] 감람산 동굴 무덤에 기념 교회가 세워진 이유…주기도문 기념교회(예루살렘)

입력 2020-05-19 08:0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누가복음 11:2-3) 이스라엘에서 성경, 역사, 그리고 지리와 고고학을 공부하고 나서야 결론을 내린 사실이지만, 성지에는 기념할 장소와 역사적 장소, 그리고 성경을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장소들로 구분해야만 한다.

감람산 정상에 있는 승천 기념교회에서 남쪽으로 50m가 되지 않는 거리에 주기도문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다. 이 두 교회는 거리가 멀지 않아 항상 걸어서 이동하게 된다. 지금은 상황이 예전보다 개선됐다고 하지만 한때는 무차별로 달려드는 장사꾼들을 물리치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필요한 물건이라면 하나쯤 팔아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의 아랍인 장사꾼들은 꼬마든 어른이든 장사를 소매치기 기회로 생각하니 그들에게 돈을 보여주는 자체가 불안하다. 한때 예루살렘에서 감람산과 십자가 길은 소매치기들과 순례객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전쟁터였다.

달려드는 장사꾼들과 오가는 자동차를 피하다 보면 밖에서 교회를 둘러볼 새도 없이 철문으로 들어서기 바쁜데 그곳이 주기도문 기념교회이다. 철문을 통과해서 교회 안으로 들어서면 무덤과 동굴을 이용해서 만든 조그마한 경당과 마당같이 넓은 공간에 커다란 소나무들이 답사자들을 맞이한다. 우리가 흔히 기념교회를 방문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왜냐하면 아직도 미완성으로 벽 일부만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 교회에서 우리가 들르는 곳은 조그만 동굴인데 기념교회의 가장 핵심이 되는 장소다. 원래 코킴(Kokim)형식의 무덤이었다. 이 무덤과 동굴이 예수님의 사역을 기념하는 장소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로마가 기독교를 인정한 이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에 의해서다. 초대 교회사를 기록한 유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 주후 263~339)에 의하면 헬레나는 처음 감람산에 엘레오나(Eleona/헬라어로 감람나무 숲이라는 의미를 지닌 ‘엘라이온’이 와전된 발음) 기념교회를 세웠다(주후 326~333). 그리고 초기에 성지를 순례했던 보르도(Bordeaux/주후 333)와 이게리아(Egeria/주후 384)의 기록이 이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으니 주기도문 기념교회의 역사성만큼은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

처음 무덤과 동굴을 덮어 기념교회를 세울 때, 이곳은 예수님의 승천, 주기도문, 그리고 말세에 대한 가르침을 기념하는 교회로 세워졌다. 그러나 이게리아의 순례기에 의하면 오늘날 승천 기념교회가 세워진 장소에서 부활절 기념행사가 거행되었고, 이 사실을 안 로마의 귀부인 포이메니아(Poimenia)가 그곳에 조그만 교회를 하나 지은 것이 승천 기념교회가 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 이후 헬레나가 세운 엘리오나 기념교회는 예수님의 승천보다는 주기도문과 말세에 대하여 가르치신 기념장소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세계 80여개의 나라의 언어로 쓰인 주기도문을 볼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이 기념교회는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마지막 사역을 하실 때 감람산 동편 산기슭에 위치한 베다니 마을에 거처를 두셨다. 그러니 예루살렘으로 입성하거나, 저녁에 베다니 숙소로 돌아가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감람산을 넘어야만 했다. 가파른 산봉우리를 단숨에 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잠시 햇빛을 피하고, 한숨 돌리기 위해서 쉬어야만 하셨을 것이다. 바로 마태복음 24:1-4절에 기록된 말세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과 예수님의 대답은 이러한 상황에서 행해졌던 것이다.

또한 이곳은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치셨던 사건을 기념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누가복음 11:2-4절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는데 본문에는 가르치신 장소에 대하여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래서 감람산에서 주기도문을 가르치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누가복음 11:2-4절 사건을 누가복음 10:38절 베다니 사건의 연장선상에서 행해진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주기도문기념교회 내부에 있는 여러나라 말로 쓰인 주기도문

아무튼 어떤 사람이 보아도 예수님의 마지막 사역이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졌고, 또 감람산을 오가셨으니, 이 산이 예수님의 발자취가 남겨진 장소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곳에 어떠한 표식을 남겨놓았던 것도 아닌데, 왜 하필이면 감람산 꼭대기에 있는 무덤과 동굴이 주님이 말씀을 가르치신 현장이 되었으며, 주후 4세기 크리스천들에게 주목을 받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스라엘의 산악지역은 모두가 석회암 바위로 이루어졌다. 즉 거대한 바위산인 것이다. 그래서 석회암 자연동굴이 많고, 이런 동굴은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지로 또는 사람들이 그늘을 피하는 장소로, 아니면 도피처나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모임을 갖는 장소로 이용될 수 있었다.

실제로 초기 예수님을 따르던 유대인 크리스천들은 동족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 모진 핍박과 박해를 받았다.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이후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그들의 기도문에 저주 문구를 삽입하기까지 했을 정도다. 또한 로마의 황제는 초기 크리스천들에 대한 박해로 베들레헴이나 골고다에 남아있던 예수님의 흔적들을 없애고 그곳에 이방신전이나 황제의 동상을 세우는 방법으로 박해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초기 유대인 크리스천들은 박해를 피해 감람산의 동굴이나 빈 무덤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생각하고, 고난을 이겨내는 힘을 얻는 장소로 이용했다. 그러니 이 기념교회는 한편으로는 성경 말씀을 근거로 하고, 다른 편으로는 유대인 크리스천들의 흔적 위에 세워졌다고 할 수 있겠다.

이스라엘에서 성경, 역사, 그리고 지리와 고고학을 공부하고 나서야 결론을 내린 사실이지만, 성지에는 기념할 장소와 역사적 장소 그리고 성경 사건이 일어난 현장과 성경을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장소들을 구분해야만 한다. 필자가 성지의 교회들을 기념교회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성지의 기념교회들을 가볍게 취급할 수 없다. 어느 것 하나 의미 없이 마구잡이로 세워진 것은 없기 때문이다.

김상목 성경현장연구소장(국민일보 성지순례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