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요”…‘리얼돌’ 사태에 팬들 ‘분노’

입력 2020-05-18 14:53 수정 2020-05-18 15:22
FC 서울 관중석에 여성 마네킹들이 배치돼 있다. 연합뉴스

“우리 딸이 유니폼 입고 TV를 보며 ‘박주영’을 외치다가 인형들을 보고 ‘아빠 노랑머리 빨강머리 언니들이 많아’라고 하는데 뭐라고 설명해줘야 하나요.”

1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 서울과 광주 FC의 프로축구 K리그1 경기 관중석을 채운 일군의 마네킹들을 본 팬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마네킹이 성인용품의 한 종류인 ‘리얼돌’과 같아보였기 때문이다. 서울은 즉시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SNS 상에서 팬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FC 서울은 18일 구단 SNS를 통해 “마네킹은 ‘달콤’이라는 회사에서 제작했고, 몇 번이나 성인용품이 아니라는 확인을 거쳤다”며 “‘소로스’라는 업체에 기납품했던 마네킹을 되돌려 받아 설치하는 과정에서 성인제품과 관련이 있는 ‘소로스’의 이름이 들어간 (피켓 상) 응원문구가 노출된 게 저희의 불찰”이라고 팬들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팬들은 사과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서울은 피켓만 해명했지만, ‘QITA(奇她·진기한 그녀들)’와 ‘DALKOM’이란 상호가 함께 적혀있었던 마네킹의 머리핀도 문제다. 확인 결과 달콤은 인천에 위치한 리얼돌 제작 공장이고, 홈페이지엔 QITA와 ‘긴밀한 사업제휴 관계’라고 설명돼 있다. 게다가 마네킹 제공 업체 ‘달콤’이 인형을 빌려줬다는 ‘소로스’는 ‘달콤스퀘어’, ‘QITA’, 공정거래위원회에 등록된 성인용품 업체 ‘컴위드’와 전화번호·주소·대표명이 같다. ‘컴위드’ 홈페이지에 따르면 ‘달콤스퀘어’와 ‘QITA’, ‘소로스’는 ‘컴위드’의 자회사 격이다.

서울 최대 팬사이트 ‘서울라이트’에 글을 작성한 한 팬은 “조금만 검색해도 나오는데 ‘업체가 그렇게 말해서’ 성인용품과 관련 없다고 판단한 게 문제”라고 분개했다.

리얼돌로 추정되는 마네킹들이 배치된 FC 서울 관중석의 모습. 연합뉴스

이에 대해 서울은 리얼돌을 제작하는 ‘DALKOM’과 마네킹 제공 업체 ‘달콤’은 전혀 별개의 회사라는 업체 대표의 말에 대한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다. 서울 관계자는 “저희가 듣기로는 소로스와 연관된 ‘DALKOM’과 (마네킹 제공 업체는) 사업자가 아예 다른 회사다. 마네킹 업체는 설립된지 3개월 밖에 안 돼 홈페이지도 없다고 했다”면서도 “저희가 보기에도 이상한 점들이 있어 사실관계를 확인해 보고 (업체에 대한) 법적 검토도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은 검토가 끝나는 대로 공식 입장을 낼 방침이다.

이날 정오쯤 ‘DALKOM’ ‘컴위드’ ‘소로스’ 등 리얼돌과 관계있는 모든 회사의 웹사이트가 갑자기 폐쇄된 것도 의문을 남기고 있다. 마네킹 제공 업체 ‘달콤’ 대표도 이날 국민일보와 전화 통화를 거부한 채 문자메시지를 통해 “제가 이번 사태에 대해 많은 책임이 있는 것 같다. 죄송하다”는 입장만 밝혔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특정 신체 부위가 강조돼 리얼돌임이 명확해 보이는 여성 마네킹을 남녀노소가 함께 응원하는 응원석에 배치한 것 자체란 지적이 많다. 기성용 이적 무산 당시 팬 2270명의 연명을 받아 구단에 소통을 요구했던 직장인 이병구(40)씨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성적 대상화가 된 인형을 팬들의 자리에 대신 배치한 게 수치스럽다”며 “이런 민감한 문제를 두고 구단 관계자가 ‘해프닝’이라고 선을 그었는데, 일반적 인식의 틀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 알 수 있다. 책임자에 대한 징계 등 명확한 사후 처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구단 SNS에 “특정 부위가 부각된 여성 마네킹들을 배치한 서울이 여성 팬을 평소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고 의견을 밝힌 팬도 있었다.

‘리얼돌’ 사태는 이미 전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영국 더 선은 “한국 구단이 지역 업체를 광고하는 X등급(불쾌할 정도로 성과 관련된) ‘섹스돌’로 빈 경기장을 채웠다”고 보도했다. K리그 중계권이 세계 36개국에 팔린 상황에서 찾아온 악재다.

여성 마네킹 설치가 한국프로축구연맹 정관 제 19조의 1(금지광고물 등)을 위반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해당 조항은 ‘성차별적인 내용으로 인권침해 여지가 있는, 혹은 음란하거나 퇴폐적인 내용으로 미풍양속 해칠 우려가 있는’ 광고물의 설치를 금지하고 있다. 업체와 서울을 연결해준 연맹 관계자는 “단순히 프로모션을 문의하는 업체 연락처를 구단에 전달해준 게 전부다. 책임은 협찬 받는 주체인 구단에 있을 수밖에 없다”며 “오늘 중에 상벌위원장에게 규정 위반 요소가 있는지 유권 해석을 의뢰할 계획이다. 해석엔 하루 이틀 정도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동환 조효석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