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갔다 주검으로…” 5·18 암매장 피해 유족의 눈물

입력 2020-05-18 13:53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일인 18일 오전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앞 5·18 민주광장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5·18 당시 남편 임은택(사망 당시 36세) 씨를 잃은 부인 최정희 씨가 편지낭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980년 5월 21일. 남편은 수금하러 광주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저녁밥을 짓던 참에 나간 남편은 그 밥이 다 식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남편을 찾아 사방을 헤매다 발견한 건 총구멍이 난 남편의 옷과 신발이었다.

“밥이 식을 때까지 오지 않은 당신을 열흘 만에 교도소에서 시신으로 만났지요. 이 억울한 마음을 세상 천지에 누가 또 알까요.” 5·18 당시 남편 임은택(사망 당시 36세)씨를 암매장 시신으로 찾았던 아내 최정희(73)씨는 18일 열린 제40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40년간 꾹꾹 눌러온 애끓는 심경을 털어놨다.

시신을 찾기 전까지 남편이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던 최씨는 결국 그해 5월 31일 광주교도소 부근 암매장 시신 발굴 현장에서 남편의 주검을 마주했다. 최씨는 “젊어서 3남매 키우며 살기가 너무 팍팍해서 맥없이 가버린 당신이 원망스러웠는데, 이제는 서른여섯 나이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당신이 불쌍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날(시신을 발견한 날)부터 당신과 광주의 일을 알리고 다녔다. 그래야 우리 아들·손자들이 다시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는 세상에서 살지 않겠느냐”면서 “우리 다시 만나는 날 나 너무 늙었다고 모른다고 하지 말고 3남매 번듯하게 키우느라 고생 많았다고 칭찬이나 한마디 해 달라”고 얘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광역시 동구 옛 전남도청 앞에서 열린 제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유족을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씨는 눈물을 참고 또 참으며 편지를 끝까지 읽은 뒤 자리로 돌아가 이내 눈물을 훔쳤다. 최씨와 비슷한 사연을 안고 기념식장에 앉아 있던 상복 차림의 오월 어머니들도 최씨의 편지 낭독을 듣는 내내 말없이 눈물지었다.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힘겹게 낭독을 마친 최씨와 악수를 하며 위로했다.

문 대통령은 “국가폭력의 진상은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면서 “행방불명자 소재를 파악하고 추가 희생자의 명예회복과 배·보상에 있어 단 한 명도 억울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5·18 당시 행방불명자로 신고된 사람은 모두 242명으로, 광주시가 인정한 행방불명자는 82명이다. 82명 중 6명은 2001년 광주 망월동 5·18 옛 묘역의 무명열사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신원이 밝혀졌으나, 나머지 76명의 행방은 여전히 확인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이어진 기념사에서 진상 규명과 옛 전남도청의 충실한 복원 등 5·18 가치 계승을 위한 정부 지원 의지를 재차 표명하고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 필요성을 강조하며 총 4차례 박수갈채를 받았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