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면 그날 도청에 남을 수 있었을까?" 그 대답이 무엇이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시간을 가졌다면, 우리는 그날의 희생자들에게 응답한 것입니다.”
18일 오전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어느 해보다 차분하게 치러졌다.
5·18 최후 항쟁지에서 최초로 개최된 기념식은 5·18을 주제로 다룬 영화의 주요 장면을 묶은 ‘도입 영상’으로 시작돼 코로나19 거리를 유지한 참석자 전원이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면서 1시간 만에 막을 내렸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들어선 옛 전남도청과 민주광장은 1980년 당시 수만 명의 시민·학생들이 모여 날마다 집회를 갖고 횃불행진을 벌이며 민주화를 외쳤던 민주항쟁의 심장부다.
가슴을 파고드는 피아노의 맑은 선율과 ‘촛불 영상’이 막바지에 등장한 다양한 문화공연은 이날 기념식을 벅찬 감동의 무대로 만들었다.
취임 이후 기념식에 세 번째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는 처음으로 5·18기념식을 망월동 묘역이 아닌, 전남도청 앞에서 거행한다”며 “도청 앞 광주에 흩뿌려진 우리의 민주주의는 지난 40년, 전국의 광장으로 퍼져 나갔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광주는 철저히 고립됐지만 단 한 건의 약탈이나 절도도 일어나지 않았다. 주인 없는 가게에 돈을 놓고 물건을 가져갔다”며 광주의 거룩한 5월 정신을 회고했다.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예년처럼 참석자 전원이 기념식에서 손을 맞잡고 노래를 힘차게 제창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광주 번화가 한복판에서 최초로 열린 기념식은 주먹밥으로 어려움을 나눴던 광주의 대동정신을 새삼 떠올리게 했다.
“5월 정신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희망이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며 만들어진 것입니다.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걱정하는 마음이 모여 정의로운 정신이 되었습니다”
40년 전 폭도로 매도됐던 광주시민들은 ‘5월의 주인공’인 유가족·부상자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고 진정한 화합과 통합을 이루려면 먼저 가해자들이 ‘진실’을 고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뼈아픈 역사’는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향해 총을 쏘도록 한 발포명령자 등 진상규명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국민통합은 가해자들의 진정한 참회와 사과가 전제돼야 한다.
40년 전 도청을 사수하며 죽은 자들의 부름에 산 자들이 진정으로 응답하기 이전에 5·18을 더 이상 왜곡·폄훼하지 않도록 사회 구성원 모두가 눈을 부릅떠야 한다. 그래야만 희생자들의 아픔을 진심으로 공감하고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있다.
그동안 무수한 검증과 대법원 판결을 통해 민주화운동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한 5·18을 둘러싼 갑론을박은 그날 산화한 희생자들의 상처를 할퀴고 민주화의 도화선이 된 5월 정신을 모욕하는 역사적 범죄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40년의 긴 세월의 흘렀지만 결코 부식되지 않은 숭고한 5월 대동정신과 목숨 걸고 ‘계엄해제’를 요구했던 시민들의 처절한 외침은 진정한 국민 대통합의 첫 걸음이 돼야 한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