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민주의 들불이여…” 5·18 첫 희생자 이세종 열사 기려

입력 2020-05-17 18:24 수정 2020-05-17 18:33
17일 전북대 민주광장에서 열린 '5·18 민중항쟁 40주년 전북기념식과 이세종 열사 40주기 추모식’에서 참가자들이 이세종 열사의 추모비에 헌화하고 있다.

“너, 민주의 들불이여. 건지벌의 영원한 넋이여….”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오후, 전북대 민주광장에서 이세종 열사의 이름이 다시 연거푸 불리어졌다. 5·18 민중항쟁 전북행사위원회는 이날 ‘5·18 민중항쟁 40주년 전북기념식과 이세종 열사 40주기 추모식’을 엄숙히 거행했다.

이세종 열사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의 최초 희생자였다.

당시 전북대 농학과 2학년이었던 이 열사는 5월17일 학생회관에서 밤샘농성을 하다 다음날 새벽 옥상에서 추락해 숨졌다. 그는 그날 학생 40여명과 함께 계엄철폐와 전두환 퇴진을 외치다 들이닥친 공수부대원들에게 쫓겨 옥상으로 올라갔다가 온몸이 멍들고 피투성이 주검으로 발견됐다.

검찰은 추락사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당시 주검을 검안했던 전북대병원 이동근 교수는 훗날 “두개골 골절과 간장파열 등은 추락이라는 한 가지 원인에 의해 동시에 발생할 수 없다”며 추락 전 집단폭행 가능성을 제기했었다.

전북지역 민주화 인사와 전북대 총학생회,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17일 이세종 열사의 추모비가 있는 전북대 민주광장에서 '5·18 민중항쟁 40주년 전북기념식과 이세종 열사 40주기 추모식’을 갖고 있다.

전북지역 민주화 인사들과 전북대 선후배들은 해마다 묵묵히 이 열사를 기리고 5·18을 기념해 왔다. 이들은 1983년 경찰의 눈을 피해 학생회관 앞에서 첫 추모제를 지내고 1985년 교정에 추모비를 세웠다.

하지만 이세종 열사와 전북대는 광주에 비교해 거의 조명 받지 못해 왔다. 수많은 시민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희생된 당시의 광주가 워낙 ‘큰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열사는 고향인 김제에 묻혔다가 1998년에야 유공자로 인정받아 이듬해 국립 5·18민주묘지에 안장됐다. 대학 측은 1995년 명예졸업장을 줬다.

이민규 순천향대 교수는 2002년 학술세미나에서 “5·18 최초의 무력 진압은 바로 전북대이고, 5·18 최초의 희생자는 바로 이세종”이라고 밝힌바 있다.

추모식에서 만난 김남규(62) 전주시의원은 “5·18은 비단 광주·전남만의 문제가 아닌 전북과 전주에서도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한 민중항쟁이었다”며 “이 열사의 죽음에 대한 재조명과 추모 작업이 활발히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 열사의 대학 선배로 40년 전 그날 밤 학생회관에 같이 있었다.

이날 행사는 ‘기억하라 오월정신! 꽃피어라 대동 세상’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5·18 민중항쟁 구속·부상동지회 전북지부와 전북대 총학생회, 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 130여명이 참가했다. 이석영 전 전북대교수와 이영호 전 한일장신대 총장 등도 참석했다.

전북대 민주광장에 있는 이세종 열사의 추모비. 위 '고 리세종 투사 추모비'라는 글씨는 고 강희남 목사가 썼고, 아래 ‘다시 살아 하늘을 보고 싶다'는 글씨는 고 신영복 선생이 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쓴 참가자들은 이 열사의 추모비 옆에 대형 영정을 세우고 국화꽃을 헌화했다. 추모비에 적혀 있는 ‘다시 살아 하늘을 보고 싶다’는 글귀를 되새기며 묵념을 했다. 이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김완술 5·18 구속부상자회 전북지부장은 “이세종 열사는 40년 전 광주에서의 잔인한 폭력의 전조로 계엄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러나 영원한 청년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며 “5월 정신을 이어받아 모두의 삶을 위한 사회 연대가 곳곳에 스미는 그날을 간절히 소망한다”고 말했다.

이세종 열사가 주검으로 발견됐던 자리에 놓여진 표지석. 이 열사의 40주기를 맞아 17일 동판으로 만들어진 이 열사의 얼굴과 추모 꽃이 그 옆에 놓여져 있다.

앞서 전북동부보훈지청도 14일 전북대 이세종 광장에서 참배하며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전북대는 이 열사가 옥상에서 떨어져 숨진 자리에 표지석 안내판을 이달중 세우기로 했다. 전북도교육청은 온라인 교육을 통해 이 열사의 생애를 알리기로 했다.

글·사진 전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