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위촉계약 채권추심원도 근로자…퇴직금 지급해야”

입력 2020-05-17 12:42

독립사업자로 계약한 채권추심원도 실질적인 근로감독 관계가 있다면 회사가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계약서에 근로자가 아닌 사업자로 명시돼 있다 할지라도 근로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A씨가 채권추심 및 신용조사업체인 B사를 상대로 제기한 퇴직금 청구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2008년 12월 B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채권추심 관련 업무를 해 온 A씨는 2015년 9월 퇴사하면서 퇴직금을 청구했다. 그러나 회사는 A씨가 입사하면서 작성한 계약서에 채권추심 업무의 위임계약을 맺은 독립사업자라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고용 계약을 맺은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퇴직금을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A씨는 “구체적인 지휘 감독 하에 근로를 하다 퇴사를 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하급심은 B사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이들이 체결한 계약을 보면 A씨가 성과에 따라 성과 수수료를 받는 자유직업소득자로서의 신분을 보유함을 명시하고 있고, 근로기준법상 고용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며 “A씨가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종속적인 관계에서 B사에 근로를 제공했다고 보기 어렵고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했다.

2심 재판부도 “A씨는 B사의 위임직 채권 추심인으로 업무를 수행하며 실적에 따른 수수료를 지급받았을 뿐 고정 급여를 받지 않았고, B사도 근로소득세가 아닌 사업소득세를 원천징수 했다”며 “A씨가 B사에 전속돼 채권 추심 업무를 수행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A씨가 B사로부터 제공받은 사무실의 지정된 자리에서 근무한 점, B사가 A씨에게 매일의 실적과 채권관리 현황을 내부전산 관리시스템에 입력하도록 한 점, 정기 또는 수시로 교육한 점 등을 들어 근로관계라고 봤다. 재판부는 “B사와 A씨 사이에 체결된 계약의 형식에도 불구하고 실질은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A씨가 B사에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계약관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