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고를 털어 총을 든 대학생들이 교도소를 6번이나 습격하고 정치사범, 흉악범, 간첩들을 풀어 혼란을 야기시키려고 한 게 민주화운동이야? 화려한 휴가나 택시운전사 같은 감성적 영화 몇 편보고 팩트로 판단하면...’(‘광주청년’을 표방한 유튜버 ‘왕자’ 영상물)
5·18민주화운동이 제40주년을 맞았으나 아직도 그날의 역사적 의미와 진실에 대한 왜곡·폄훼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 현대사 최대 비극으로 꼽히는 5·18은 1989년 국회 청문회, 1995년 특별법 제정을 거쳐 1997년 국가기념일로 제정됐다. 이후 국가보훈처 주관의 정부 공식 기념행사가 매년 엄숙하게 열리고 있다. 국가적 합의와 법적 정비를 거쳐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기념사업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5·18은 북한 특수부대 소행으로 발생한 무장난동이다’는 등 무수한 5·18 왜곡·폄훼는 우리사회에 여전히 뿌리깊은 똬리를 틀고 있다.
‘1980년 5월 전라도 광주 무장폭동 당시 여자로 변장을 하고 북한특수군 600명을 총지휘한 ‘리을설’ 인민군 총사령관을 대한민국 국민여러분께 고발합니다.’(극우 보수논객 지만원 유튜브 방송). 대표적 보수논객으로 꼽히는 지씨는 2010년대 이후 각종 강연회와 집회, 인터넷 사이트 등을 통해 전설적 인민군 원수 리을설이 홍길동처럼 펄펄 날아다닌 북한 특수군을 지휘해 5·18 광주사태가 발생했다는 허황된 주장을 반복해왔다. 그는 또 1980년 당시와 현재 얼굴 사진을 비교 첨부한 일명 ‘광수시리즈’를 통해 광주에 내려온 북한군 고위직들이 시민들을 선동해 무장봉기를 일으켰다고 셀 수 없이 강변했다. ‘광수’는 광주의 수상한 사람들 또는 광주 북한 특수군의 줄임말이다.
심지어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제외한 대부분 북한 핵심인사들이 당시 광주에 내려와 무장활동을 했다는 엉뚱한 주장으로 주변을 아연실색케했다. 그는 지난해 대법원까지 간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하자 최근 슬며시 관련 글을 무더기 삭제했다. 이 과정에서 2억2000만원이 넘는 배상금을 재판 원고인 5·18당사자들에게 물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40주년이 된 올해에도 북한군 투입설 등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이라는 제목을 단 지씨의 책 내용 등을 악용해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려는 정치권 인사들과 구독자 확보로 광고수익만 올리는 보수성향 유튜버가 극성을 부리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유경남 학예연구사는 “5·18 왜곡은 그날 이후 40년간 근절되지 않고 있다”며 “당시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계엄군의 만행에 대한 광주시민들의 정당한 저항을 소수 조정에 의한 폭동으로 폄하한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진단했다. 불순분자들의 유언비어에 의해 발생한 폭도들의 과격시위가 무장봉기로 확대됐다는 논리가 일부 지역과 계층에서 ‘정설’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문제는 미래의 주역인 초중고생 등 청소년과 20~30대 젊은 층에서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는 점이다. ‘1인 방송’이 주류를 이룬 유튜브와 SNS 등 인터넷에서 활개치는 가짜뉴스 영향으로 5·18은 현재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중환자나 다름없다. 실제 5·18기념재단이 지난해 5월부터 9월까지 처음으로 1200여건의 영상 모니터링을 통해 ‘유튜브 5·18왜곡·폄훼 가짜뉴스’를 파악한 결과는 충격적 수준이다. 북한의 사주에 의한 폭동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5·18! 북한군이 전남도청 지하에서 지휘했다’(프리덤뉴스), ‘김정일, 내각간부들 급파 작전 참관시켜(SesameTube 참깨방송), 5·18폭동 주범 북한에선 공화국 영웅, 남한에선 민주화유공자?!! 탈북자의 충격증언(뉴스타운 TV) 등 객관적 증거나 근거 없는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가짜뉴스들이 ‘좋아요’와 ‘구독’을 늘려 광고수익에 눈이 멀어 소모적 경쟁을 벌이는 동안 왜곡·폄훼된 5·18은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의 뇌리에 그대로 각인되고 있다. 유튜브 5·18 왜곡 영상은 2008년 1건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조사기간동안 파악한 것만 98건으로 역대 최대 건수를 기록했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5·18 왜곡 영상은 46개 채널 200여건에 달했다. 조회수가 10만건을 넘은 영상들도 상당수다. 조사기간 10만명 이상이 조회한 왜곡 영상은 34건, 5만명~10만명 이하 15건, 1만~5만 이하 62건 등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국내에는 소위 ‘역사부정죄’가 없다는 이유로 5·18 왜곡 영상은 1건도 ‘삭제’되거나 ‘차단’되지 않고 있다. 방송심의위원회가 지난해 117건의 5·18 왜곡 영상에 대해 삭제·접속차단 결정을 내렸지만 유튜브 운영주체가 외국회사인데다 법적 구속력이 없어 ‘메아리 없는 외침’에 그치고 있다. 지씨 등 극우 보수인사들에 대한 단죄도 한계상황을 맞은 지 오래다. 인터넷에는 이들의 주장을 토대로 한 왜곡·폄훼가 떠돌고 있지만 별다른 처벌이 어려운 배경이다.
5·18기념재단 ‘고백과 증언센터’ 박채웅 팀장은 “민변과 연계한 법적 소송과 유튜브 ‘5·18 TV’ 운영을 통한 언론미디어 대응, 전국 각지 시민단체와 연합한 시민참여와 연대 등 3개 분야로 나눠 5·18 진실찾기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지만 일부 종편 등 보수 언론까지 가담하는 왜곡·폄훼를 막기에는 중과부적”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5·18 왜곡·폄훼 가짜뉴스’ 폐해에 공감한 국민이 대부분이라는 현실이다. 5·18기념재단이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 ㈜현대리서치컨설팅에 의뢰해 전국 만19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2020년 5·18 인식조사’를 조사한 결과 소위 5·18역사왜곡처벌법 제정여부에 대한 질문에 ‘반드시 필요하다’가 55.8%, ‘대체로 필요하다’가 24%로 찬성율이 79.8%로 매우 높았다. 지역별로는 광주·전라 91.8%, 인천·경기 82.6%, 대전·충청 81.5%, 대구·경북 60.3% 순이었고 연령별로는 50대가 85.1%로 가장 높았다. 5·18 가짜뉴스를 직접 접한 경험이 있다고 한 응답자도 69.2%로 나타났다.
21대 국회의원 선출을 위한 4·15 총선을 계기로 단순히 조회수를 늘려 돈벌이만 하려고 혈안이 된 극우 유튜버와 결별하자는 논의가 보수진영 정치권에서 잇따라 제기된 사실도 긍정적이다.
지난달 말 5·18 왜곡 유튜버 영상과 같은 형식의 반박 영상을 제작 게재한 광주 극락초등학교 백성동 교사는 “왜곡된 유튜브 영상을 본 어린이들이 비뚤어지고 뒤틀린 논리에 휩싸이기 쉽기 때문에 악의적 폄훼에는 조목조목 반박하고 더 적극적으로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인권·평화·공동체 정신이 깃든 5·18이 지긋지긋하게 왜곡·폄훼되고 지역에 갇힌 광주만의 역사로 머무는 게 안타깝다”며 “전국의 청소년들이 공인교과서 등을 통해 5·18에 관해 올바른 인식을 체계적으로 갖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