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트럼프 ‘코로나 대처’는 재앙” 선제공격
트럼프 “오바마가 정치공작…오바마 게이트” 역공
바이든 “오바마 선거지원, 지지층 결집에 큰 힘”
오바마의 ‘자진 등판’ 파괴력엔 엇갈린 평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올해 11월 3일 실시될 미국 대선판에 제 발로 뛰어들었다. 정권 탈환을 외치면서 정치 전면에 다시 등장한 것이다. 2017년 1월 19일 백악관을 떠난 지 3년 4개월 만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목표는 딱 하나. 올해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패배시키는 것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 후보를 사실상 확정한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특별한 관계다. 바이든은 오바마의 대통령 재임 8년 동안 부통령을 지냈다.
하지만 오바마 전 대통령의 대선 참전은 ‘양날의 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전 대통령의 등판을 오히려 반기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전 대통령을 민주당에 대한 공격의 고리로 삼으면서 집중 포화를 퍼붓고 있다. 현직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에게 거친 공세를 가하는 것은 미국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다.
유색 인종이면서 진보 성향의 오바마 전 대통령이 나서봤자 백인 위주의 보수적인 공화당 지지층은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반면 바이든 전 부통령에겐 오바마 전 대통령의 자발적 등장이 천군만마다. 지지층을 뭉치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아직도 민주당의 상징적 존재다.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의 인기는 여전히 높다.
이런 상황에 대해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와 바이든 모두 오바마를 그들의 대선 캠페인 중심에 세우려 하고 있다”고 지난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3000명과 전화 회의…의도적 유출인가, 조심성이 없었나
오바마는 트럼프 행정부 들어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에 빠져 있었다. 오바마는 트럼프에 대해 거침없이 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좌절감을 표현하기도 했으나, 또 과도한 발언을 할 경우 자신의 영향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했다고 WP는 전했다.
그런 오바마가 다시 뉴스의 중심에 섰다. 오바마가 지난 8일, 자신이 집권했을 때 백악관과 행정부에서 일했던 약 3000명의 사람들과 비공개적으로 전화 회의(conference call)를 30분 동안 가졌던 것이 발단이 됐다.
여기서 오바마가 했던 발언의 녹음파일을 야후 뉴스가 입수해 그 다음날인 9일 특종 보도했다. 오바마의 발언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발언의 파장은 컸다. 이 전화 회의에서 오바마가 했던 얘기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트럼프 비판이다. 오바마는 트럼프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처에 대해 “완전한 혼돈의 재앙”이라고 거세게 비난했다.
그 다음으로, 바이든의 대선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붓겠다고 강조했다. 오바마는 “나는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바이든의) 선거운동을 하겠다”고 말했다.
세 번째 발언은 향후 트럼프 공격의 빌미가 됐다. 오바마는, 윌리엄 바 법무장관이 ‘러시아 스캔들’에 연루된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한 기소를 취하하기로 했다는 결정에 대해 “법치가 위험에 빠졌다”고 비판했다.
플린은 트럼프가 아끼는 측근 인사로 ‘러시아 스캔들’ 수사 당시 허위 진술 혐의로 기소됐었다.
전화 회의 발언이 흘러나온 것과 관련해 오바마 측의 의도적 유출인지, 새어 나올 위험성을 알면서도 오바마가 조심성 없이 말했던 것인지에 대해선 의견만 분분할 따름이다. 다만 오바마 측근들은 트럼프와 플린 문제를 비판한 대목이 외부로 새나올까 걱정했다고 WP는 전했다.
트럼프의 역습…‘오바마 게이트’
트럼프는 반격에 나섰다. ‘오바마 때리기’에 모든 힘을 쏟았다. 뉴욕타임스(NYT)가 “미국 코로나19 피해가 극심한 데도 트럼프가 오바마 공격에 많은 시간을 쓴다”고 꼬집을 정도였다.
트럼프는 코로나19와 관련해 오바마 행정부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권을 넘겼다고 비난했다. 트럼프는 또 오바마 행정부가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 검사 키트 생산이 늦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WP는 트럼프의 이런 비판은 사실과 다른 것이지만 오바마는 공개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화력을 집중하는 것은 이른바 ‘오바마 게이트’다. ‘오바마 게이트’는 트럼프가 만든 신조어다.
‘러시아 스캔들’은 오바마가 트럼프를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조작한 정치 공작이라는 주장을 다시 들고 나온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해묵은 음모론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다는 비판도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러시아 스캔들은 지난 대선 당시 트럼프 선거 캠프와 러시아 정부가 트럼프의 당선을 위해 공모·내통했다는 의혹을 받는 사건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러시아 스캔들 ‘뒤집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트럼프 진영의 공모·내통 의혹을 오바마 세력의 정치 공작으로 뒤바꾸려는 의도다.
이번 역습은 조직적이다. 공화당도 발맞춰 나선 것이다. 트럼프와 공화당의 합동작전엔 ‘논란의 인물’ 플린의 문제가 시발점이 됐다.
공화당 상원의원 3명은 오바마 행정부가 끝날 무렵에, 러시아와 비밀리에 접촉했던 트럼프 측 인사의 정체를 밝힐 것을 요구했던 당시 고위 당국자 30여명의 명단을 13일 공개했다.
리처드 그리넬 국가안보국(DNI) 국장이 이날 기밀해제된 문서에 있는 명단을 상원의원들에게 보냈다고 미국 언론들이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보기관과 여당이 협력한 작품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오바마 행정부 인사들이 정보를 요구했던 시점은 대선에서 승리했던 트럼프가 대통령 취임식을 갖기 전인 2016년 11월 중순∼2017년 1월 중순이었다.
오바마 측 인사들이 정체를 알고 싶었던 문제의 인사는 플린이었다. 트럼프는 오바마 측이 플린의 이름을 알아낸 뒤 자신을 위기에 빠뜨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를 외부에 유출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래서 러시아 스캔들이 불붙었다는 것이다.
트럼프 “오바마와 바이든은 부패”…미국 언론들 “실체없어”
특히 플린의 정체를 밝힐 것을 요구했던 명단엔 이번 대선에 민주당 후보로 나설 바이든 당시 부통령도 포함돼있다.
트럼프는 14일 방영된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것은 모두 오바마가 한 일이고, 모두 바이든이 한 일”이라면서 “이들은 부패했고, 우리는 이들을 잡았다”고 주장했다.
공화당이 장악한 미 상원은 다시 움직였다. 대표적인 ‘친(親) 트럼프’ 인사인, 공화당 소속의 린지 그레이엄 상원 법사위원장은 법사위가 미 연방수사국(FBI)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와 관련해 광범위한 조사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사의 시작부터 수사 과정의 적법성까지 따져 묻겠다는 의도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만약 내가 상원의원이나 하원의원이었다면 가장 먼저 불렀을 사람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라며 그의 증인 송환을 촉구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투표하라”는 한 단어로 맞받아쳤다.
미국 전 대통령의 의회 증인 소환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레이엄 위원장도 “의회가 전직 대통령을 부르는 선례가 세워지는 것에 대해 크게 우려한다”면서 오바마 소환에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다.
‘오바마 게이트’에 대한 미국 언론들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NYT는 “트럼프는 오바마가 자신을 무너뜨리기 위한 흉계를 주도했다는 실체 없는 혐의를 들고 나왔다”면서 “트럼프의 주장은 증거도 없고, 어떤 행위가 범죄인지에 대해서도 명시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오바마 행정부 인사들이 정체 공개를 요구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반박이 나왔다. AP통신은 “정작 트럼프 행정부가 오바마 행정부보다 더 자주 신원 공개 절차를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바마의 바이든 지원…파괴력 놓고 엇갈린 전망
하지만 바이든에겐 오바마가 승리의 보증수표다. 바이든 캠프의 대변인은 “오바마는 선거운동뿐만 아니라 민주당원들의 대선 투표율에 크게 도움이 될 엄청난 자산”이라고 말했다.
오바마의 높은 인지도와 폭넓은 소셜미디어 네트위크는 여전히 강력한 무기다. 오바마는 77세 고령에다 백인이며, 고루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바이든의 약점을 커버해줄 수 있는 매력적인 존재다.
WP는 “바이든 캠프가 올해 146개의 선거운동 동영상을 올렸는데, 이들의 평균 조회수는 2만 8000건이며, 몇 개의 동영상만 10만 조회수를 넘겼다”면서 “하지만 오바마가 바이든을 지지한다는 지난달 동영상은 19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바이든 캠프는 오바마가 바이든의 팟캐스트에 정기적으로 출연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바이든은 부통령 후보 선정 등과 관련해 오바마와 꾸준히 대화를 나누고 있다. WP는 “오바마와 바이든이 트럼프에 맞서 더욱 긴밀히 힘을 합칠 것”이라고 보도했다.
오바마 입장에서도 ‘오바마 유산’ 뒤집기에만 집착하고, 코로나19와 러시아 스캔들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오바마 책임론’을 들고 나온 트럼프의 재선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다.
오바마 참모들은 대선이 다가오면 2018년 중간선거 때처럼 오바마가 직접 지원 유세를 다닐 수 있다고 전했다.
오바마는 16일 수백만명의 고교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화상연설을 할 계획이다. 이 연설은 주요 방송사들이 방영할 예정이다. 그러나 오바마는 이 연설에서 트럼프나 바이든을 언급하기보다는 젊은 사람들의 지역사회 활동을 주제로 삼을 것이라고 참모들은 전했다.
오바마는 트럼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은 유지하겠지만, 트럼프 ‘저격수’ 역할은 바이든 러닝메이트인 부통령 후보가 맡고, 오바마는 거시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오바마는 워싱턴의 자택에, 바이든은 델라웨어주 자택에 각각 외출금지 상태로 머물러 있다.
그러나 오바마의 파괴력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바이든 캠프는 오바마가 바이든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WP는 “오바마의 대통령 재임 기간, 오바마가 민주당의 승리에 공헌하는 데는 제한적이었다”고 지적했다. 오바마가 현역 대통령으로서 지원했는데도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당시 트럼프에게 패배했던 사례를 끄집어낸 것이다.
오바마가 전력을 다해 바이든을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