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 강북구의 모 아파트 경비원이 주민으로부터 보름 가까이 폭행과 폭언에 시달리다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경비원은 코뼈가 주저앉을 만큼 심한 폭행을 당했는데 이유는 사소한 차량 주차문제였다. 공분은 정치권으로도 전해져 국회와 정부가 나서 경비원 폭행 및 폭언 예방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가해자가 입건된 지난 14일 경비원 A씨(66)가 국민일보로 전화를 걸어왔다. 경기 파주에서 아파트단지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그는 인터뷰를 요청했다. A씨는 ‘폭력과 폭행 예방도 고마운 일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평소 처우와 고용문제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고 했다.
A씨는 용역회사 소속으로 일해온 1년 10개월 동안 근로계약서를 7번 다시 썼다. 그에 따르면 대부분의 아파트 현장에는 경비원들을 3개월마다 재계약하는 암묵적인 관행이 있다. 자동 연장에 가까운 형식적인 절차이지만 이런 방식은 상시적인 고용불안을 불러왔다. 주민, 관리소장, 주민대표와 사소한 마찰이라도 생기면 곧바로 계약이 해지될 수 있었다. 대부분의 경비원들이 어지간한 갑질에도 고개를 숙이는 이유였다.
A씨의 입을 통해 일상 속 풍경처럼 스쳐갔던 경비원들의 감춰왔던 고충을 들었다.
-강북 경비원 사건을 보면 어려움이 정말 많은 것 같다
“나는 석재 판매사업을 하다가 은퇴를 하고 2018년 7월부터 이곳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 여기는 1000세대 규모의 아파트인데 경비원은 나를 포함해 10명 정도 된다. 주변 얘기들을 들어보면 어떤 사건을 계기로 매스컴을 탈 때마다 업무환경이나 분위기는 좋아진다. 경비원을 대하는 태도가 좋아진다든가, 경비실에 에어컨이 설치되는 식이다. 그렇지만 법이나 제도적인 부분들, 특히 고용불안 문제는 10년 전 그대로이다. 이번 정부 들어 대통령도 비정규직 처우개선 등을 약속해서 기대했는데 경비원은 누구 하나 신경 써주는 사람이 없다. 가입할 만한 노조, 단체도 없어 부당하게 잘려도 하소연할 곳도 없다.”
-가장 문제가 되는 계약 상황은
“우리 아파트는 24시간 격일 근무 시스템으로, 오전 6시부터 다음날 같은 시각까지 일한 뒤 교대한다. 초소마다 1명씩 배치되고, 정문 초소에는 교통 통제를 위해 1명이 추가로 배치된다. 휴게시간은 총 9시간 30분인데 점심 낮 12시~오후 2시, 저녁 오후 6시~오후 8시30분, 취침 5시간이 주어진다. 월급은 최저임금과 수당을 포함해서 약 200만원으로, 근무시간과 정확히 비례해서 불만이 없다. 문제는 고용계약이다. 3개월마다 계약서를 다시 쓰라고 한다. 초반 3개월 수습기간에 재계약을 하는 건 이해한다. 어느 회사든 적응기간도 필요하고 본인 적성에 맞나 파악해야 하니까. 그런데 수습 떼고서도 1년, 2년 단위도 아니고 3개월 단위로 계속 계약한다는 것이 말이 안되지 않나. 너무 억울해서 지방고용노동청에 전화를 해봤지만 ‘법이 그렇다, 어쩔 수 없다’고 너무 당연한 것처럼 응답하더라. 민주노총에도 전화했지만 국내에 경비원 노조는 없어서 도움받기 어려웠다.”
-3개월 쪼개기 계약이 어떤 문제를 낳고 있나
“경비원들이 갑질에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다. 우리 계약서에 7가지 재계약 탈락 요건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주민과의 갈등 발생’이다. 만약에 누군가 경비원에 대해서 관리사무소에 민원을 넣는다면, 즉시 용역회사에 연락이 가서 3개월 재계약을 하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경비원은 업무 외적인 일을 지시받거나 부당한 일을 당해도 항의하기가 힘들다. 얼마 전에 신임 관리소장이 왔는데 경비원 반장이 갈등을 빚다가 잘릴 뻔했는데 동대표의 중재로 막은 일이 있었다. 새로 온 소장은 50대 초반으로 젊었는데 의욕이 넘쳤다. 그래서 예전 소장이 시키지 않았던 일을 막 시켰다. 시간 단위로 주차장을 순찰하고 주민 차량에 경례를 하라는 등의 요구를 했다. 그런데 경비원들은 이미 자기구역 청소, 게시판 관리, 분리수거 정리를 하느라 바쁜데 이런 사정을 봐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지시를 하니까 경비원 반장과 몇몇이 대든 것이다. 화가 난 신임소장은 경비업체 측에 이들을 해고하라고 요청했지만, 주민대표가 말려서 겨우 진정됐다. 물론 관리소장들도 고용환경이 불안한 것은 이해한다. 대부분 용역이어서 주민이 이번 소장은 제대로 관리를 못한다고 민원 넣으면 자리가 위태롭다.”
-고용 불안 이외의 문제도 있나
“또 다른 문제점은 퇴직금 부분이다. 경비원들을 고용하는 용역회사들은 대개 1년마다 교체된다. 사람은 그대로 있고 용역업체만 교체되는 건데, 업체가 떠나면서 1년을 채운 경비원에게는 1개월치 퇴직금을 주는 것이 관행이다. 그런데 1년을 못 채우고 10개월, 7개월 일한 사람들은 퇴직금을 받지 못한다. 업체가 교체되면서 1년 미만 일한 기간은 날아가는 것이다. 나도 이전 업체랑 7개월 일한 부분에 대해서 근속기간을 인정받지 못했다. 억울해서 노동청에 상담했더니 ‘불합리한 걸 알지만 법규상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 업체가 바뀌면 내가 일한 기간도 승계돼야 상식적이라고 본다. 경비가 택한 상황이 아니지 않나. 그것은 회사 간의 인수 문제고, 사람은 그대로 두고 쓰니까.”
-계약서 이외의 업무도 많이 하는 것으로 아는데
“본래 경비가 하는 일은 순찰업무, 각 세대 전출입자 통제 등이다. 경비업법에 따르면 경비들은 시설경비 외적인 일을 할 수 없게 돼 있다. 가을에 낙엽 청소, 택배 수령, 불법주차 단속, 분리수거 등은 원칙적으로 금지되는데 대부분의 경비원들은 별도 수당을 받으면서 해당 업무를 겸하고 있다. 경비업무 자체가 그렇게 고되진 않아서 불만은 없다. 다만 일한 만큼 대가를 받고 싶다. 다들 정당한 돈을 받고 싶어서 온 사람들이니까.”
-추가 업무 중 가장 어려운 것은
“제일 고된 부분은 분리수거 업무이다. 우리 아파트 경우 주민들이 금, 토요일 이틀동안 오후 4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분리수거를 배출한다. 새벽 1, 2시가 넘어서도 주민들이 쓰레기를 배출한다. 이때 경비원들은 넘치는 분리수거 봉지를 교체하고 폐지를 정리하느라 잠을 자면 안된다. 다음날인 토요일 수거차량이 오가면 뒷정리도 해야 하고. 내가 생각할 때는 아무리 못해도 분리수거 수당으로 하루에 5만원은 줘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1주일에 5만원이니까 한달에 20만원 정도가 적정 수준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한달에 5만원만 받고 있다. 수당 부분은 아파트단지마다 액수가 달라서 옆동네들은 한달에 10만원, 30만원 다 다르다. 분리수거 기준이 최근에 강화됐다. 스티로폼, 종이, 페트병을 내놓을 때 비닐, 스테이플러 심 등을 제거해야 한다. 원래는 주민들이 다 제거해서 내놓아야 하지만 잘 안되더라. 수거업체들이 정리 안된 분리수거물은 앞으로 안 가져간다고 해버리면 경비원들이 다 정리하기로 합의된 상황이다.”
-경찰은 12월부터 경비원의 외적 업무에 대한 단속을 예고했는데
“취업하기 전에 한국경비협회에서 경비원 신임교육을 3일간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그때 배운 경비업법에 따르면 경비 외적 업무를 경비원에게 시키지 못하게 돼 있다. 하지만 경비원이 분리수거, 청소를 안 하면 계약서상의 경비업무만 하게 될 텐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동대표 입장에서는 경비원을 자르고 청소원을 더 고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경비원 절반은 잘리게 될까 두렵다.”
-휴게공간은 별도로 마련돼 있나
“지하주차장에 샌드위치 패널로 마련돼 있다. 내부에 보일러와 에어컨도 설치돼 있어서 그런대로 지낼 만한데 지하라서 습하고 벌레, 쥐도 기어 다닌다. 주민대표에게 휴게실을 지상으로 올려달라고 요구는 하고 있다. 초소에 냉난방 시설은 잘 마련돼 있다. 주변 경비원 중에 하소연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직까지 초소에 에어컨이나 난방기구가 없는 곳도 있다더라. 휴게공간이 없어서 그냥 초소에서 의자에 앉아 자는 아파트도 많다. 그거는 뭐 자기가 받는 월급과 여건을 비교해서 본인이 선택할 몫이라고 본다.”
-강북구 아파트 사건을 접하고 느낀 점은
“우리 아파트에도 진상으로 통하는 주민이 하나둘 있지만 대부분의 주민은 잘 대해준다. 그런데 진상들이 경비원 개인마다 대하는 태도에 차이가 있다. 체격이 있고 성격이 강한 사람들에게는 감히 못되게 굴지 못한다. 나는 키 178cm에 몸무게도 85kg이어서 험한 일은 당하지 않는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술 취한 젊은 남성이 여자친구를 태운 차량을 끌고 지하에 주차했다. 여자친구를 바래다주더니 경비실로 찾아와서 자기 차를 찾아달라고 고성을 질렀다. 이전 근무자는 왜소하고 순했는데 그의 고압적인 태도에 욕을 먹었다더라. 나는 순순하지가 않아서 경찰에 음주운전으로 그를 신고했다. 제도적 보호장치는 거의 없다보니 경비원들은 진상을 대할 수 있는 체격이나 성격이 없다면 맞서기 힘들다. 고인이 된 강북구 경비원은 굉장히 순하고 착했다던데 안타까운 일이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