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열린 2020 남자부 외국인선수 드래프트 지명 순서 추첨 현장. 총 140개의 추첨 공 중 35개를 확보했던 한국전력과 30개를 갖고 있던 KB손해보험의 희비가 갈렸다. KB손해보험은 한국전력보다 낮은 확률에도 1순위 추첨권을 가져간 반면, 한국전력은 순번이 하위권인 5순위까지 밀려서다. 하지만 드래프트가 끝난 뒤 양 팀 감독들은 나름대로의 만족감을 드러냈다.
말리 출신 장신(206㎝) 라이트 공격수 노우모리 케이타(18)를 지명한 이상열 KB손해보험 감독은 싱글벙글한 표정이었다. 그는 15일 서울 강남의 리베라호텔에서 진행된 드래프트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왠지 (1순위를 뽑을지) 예상했다”고 긴장됐던 순번 추첨의 소감을 전했다.
이 감독은 “운칠기삼이라고, KB손해보험 감독을 맡을 확률이 높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우연찮게 감독이 된 것처럼 운이 상승하고 있는 것 같다”며 “드래프트장에 왔더니 모두 노란색 스티커를 붙이고 있어 ‘아 오늘은 KB손해보험의 날이다. 노란 공이 일순위겠다’싶었다”며 “하늘이 도운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한국배구연맹은 코로나19 문진표를 작성한 참석자들에게 입장시 확인 표시로 노란 스티커를 붙여줬다.
케이타는 지난 시즌 세르비아 리그에서 뛰었고, 성장 가능성도 큰 걸로 알려졌다. 지난 시즌 외국인 선수들의 잦은 부상으로 고생했던 KB손해보험이기에 어리고 탄탄한 선수를 원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V-리그 최초로 2000년대생일 정도로 19세에 불과한 어린 나이가 ‘모험’이란 지적도 있다. 아직 경험이 적어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어서다.
이에 대해 이 감독은 “KB손해보험 감독직을 이 나이에 수행하는 것도 모험”이라며 “황택의와 잘 맞는 펠리페 같은 선수도 생각했지만, 더 발전하기 힘들고 체력과 기량이 떨어질 거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케이타는 어리고 활기차며 잘만 하면 좋은 선수로 만들 수 있다. 별명이 ‘짐승’일 정도로 뭐든 때린다. 다우디보다도 나아보인다”며 “안전하지만 퇴보할 수 있는 선수를 지명한다면 (구단 전력상) 좋은 성적을 내기 힘든다. 모험을 한 선택”이라고 덧붙였다.
케이타는 영상에서 빠른 몸놀림에 스텝을 밟지 않고서도 좋은 각도로 볼을 때릴 수 있는 기량을 선보였다고 한다. 레프트를 봐와 라이트 포지션에 적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이 감독이 케이타를 선택한 건 ‘점프력’ 때문이었다. 이 감독은 “사실 (OK저축은행이 뽑은) 필립도 고민했는데, 수준 높은 팀에는 잘 맞는 선수지만 우리 팀 사정엔 맞지 않다 판단했다”며 “국내에선 어느 정도 몰빵도 필요하기에 점프력 좋은 어린 선수를 골랐다”고 밝혔다.
장병철 감독은 선수 선발 순번이 뒤로 밀린 ‘불운’에도 미소를 잃지 않은 모습이었다. 지명한 카일 러셀(26)이 원래 생각해뒀던 레프트 3명의 리스트 중 상위권에 위치했던 선수였기 때문이다. 장 감독은 “(순번이 뒤늦게 뽑힌 게) 자주 있는 일이라 괜찮았다”며 “영상 드래프트라 1·2번에 바로 뽑는 건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고 상기했다.
미국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던 러셀은 포지션이 레프트가 아닌 라이트다. 한국전력은 올 시즌 자유계약선수(FA)로 라이트 박철우를 영입해 레프트 포지션 선수가 필요했는데 의아한 선택이었다. 이에 대해 장 감독은 “원래 레프트지만 최근 라이트로 뛰어온 것”이라며 “레프트도 잘 해줄 수 있는 선수라 부담 없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가빈 슈미트(34)와 재계약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박철우와 포지션이 겹치고 레프트로 쓰기엔 리시브가 안 좋았다”며 “인성은 좋지만 포지션이 겹치는 탓에 놔줬다”고 밝혔다.
글·사진=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