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12·12 직후 美에 군부장악 도움 요청

입력 2020-05-15 16:28

전두환 전 대통령이 12·12 군사반란 직후 주한 미국대사와 면담을 하고 군부 내 반대 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미국에 도움을 요청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15일 미국 국무부가 한국 외교부에 제공한 43건(약 140쪽 분량)의 5·18 민주화운동 관련 외교문건에 따르면 미 대사는 본국에 보낸 보고에서 전 전 대통령과 신군부를 1908년 터키에서 군사혁명을 일으킨 젊은 장교들을 의미하는 ‘Young Turks’(젊은 투르크)로 지칭하며 이들이 미국의 도움을 원한다고 판단했다.

이번에 추가 비밀해제된 미 국무부 기록물은 43건, 140쪽 분량으로 5·18 당시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생산한 문서가 포함됐다. 과거 문서 내용 대부분이 삭제된 채 제공됐으며, 외교 경로를 통한 비밀해제 검토 요청으로 최근 미 국무부가 미삭제본을 공개했다.


문건에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사령관이던 이희성 전 육군 대장이 “(민주화운동을) 통제하지 못하면 베트남처럼 공산화될 것”이라고 한 정황도 담겼다.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니어 당시 주한 미국대사는 이희성 계엄사령관과의 면담 내용을 보고서로 작성했다. 면담에서 이 전 사령관은 “국민들이 학생 시위와 이로 인한 경기 하강을 우려하고 있으며, 왜 계엄령으로 대응하지 않는지 걱정한다고 들었다”며 “계급 투쟁 촉구, 자본주의 체제 비난, 공산주의 옹호 내용의 고려대 성명서가 나온 이후 국민들 목소리가 더 거세지고 있다”며 진압을 정당화했다.

또 학생들이 ‘베트남은 민주화를 이루지 못했을지언정, 적어도 통일은 했다’ ‘한국도 통일을 위해 대통령제와 북한 체제 사이 조정을 해야 한다’ 등 인식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전 사령관은 “학생 50%가 선배들에게 (이같은 사상을) 배웠고, 20%는 동아리 등에서 배웠다고 한다. 불과 입학한 지 두 달밖에 안 된 학생들”이라면서 “이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면 한국도 베트남과 비슷하게 공산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군은 이러한 논리로 최규하 당시 대통령 설득에 나섰으며, 대규모 시위가 발생할 경우 비무장지대 군사력을 동원해야 하며 결국 북한으로부터 공격 위험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