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연 논란, 곪은 게 터졌다. 위안부문제 폄훼는 안돼”

입력 2020-05-14 17:26 수정 2020-05-14 17:44

한·일 관계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국내 전문가들은 최근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 출신인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인과 정의연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곪은 데가 터졌다’는 반응을 보였다. 불투명한 회계, 지나친 반일 스탠스 등 한 번쯤 짚고 갔어야 했을 문제점들이 분명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 때문에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큰 위안부 피해자 인권운동이 폄훼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국민일보는 사안의 민감성을 감안해 취재에 응한 전문가 전원을 익명 처리했다.

서울의 한 대학에 재직 중인 A교수는 14일 “윤 당선인과 정의연을 둘러싼 각종 논란 때문에 위안부 운동 전체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일까 걱정된다”면서 “회계 문제 등은 어떤 방식으로든 진실이 규명돼야 하고 책임질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이 사안 때문에 세계적으로 의의가 큰 위안부 운동의 가치마저 훼손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간 싱크탱크 소속 B연구원은 “위안부는 예민한 문제다. 다만 1980~90년대를 지나며 시민사회운동이 활발해지는 가운데 쌓여왔던 문제점들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면서 “이 일이 여야 대결 구도처럼 단체와 피해자 할머니 사이의 갈등으로 불거질까 가장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일본이 주의 깊게 이 사안을 지켜보고 있다. 우리 내부 갈등 탓에 단합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도 우려스럽다”고 부연했다.


일부 논란은 과열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도권 대학의 C교수는 “정의연의 회계 문제는 도덕성 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일각에서 제기된 윤 당선인의 10억엔 사전 인지 논란은 본질에서 벗어난 것 같다. 당시 외교부가 윤 당선인이 수용하지 못했을 부분들은 전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위안부 운동 단체들이 시간이 갈수록 이념과 활동 측면에서 경직성이 커졌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여러 단체들 간 주도권 다툼이 선명성 경쟁으로 이어지면서 대일(對日) 스탠스가 지나치게 강경해졌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A교수는 “정의연과 나눔의 집 사이도 좋지 않은 것으로 안다. 다른 단체들도 갈등이 크다”며 “외부에서 보기보다 자신들 사이에서 노선을 둘러싸고 견해 차이가 제법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서로 경쟁 구도가 생기면서 투쟁 일변도로 가는 측면이 있지 않았나 싶다”고 덧붙였다.

서울 시내 대학의 D교수는 “단체들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위한다는 명분은 내세우면서도 스스로를 운동조직의 일종으로 여겼던 것 같다”면서 “일본과 화해할 가능성은 단 1%도 열어두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반일운동을 위해 할머니를 활용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를 계기로 위안부 운동의 질적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일본의 태도 변화를 지속적으로 촉구하는 동시에 한·일 관계의 미래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책연구기관 소속 E연구원은 “이용수 할머니의 발언이 정곡을 찔렀다고 본다”며 “지금까지는 일본에 반성과 사죄를 강요하면서 젊은이들에게 대립만을 강요해온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세대를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 위안부 문제에서 어떤 역사적 교훈을 얻을지 고민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