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경고가 나왔다. 말라리아나 뎅기열처럼 소멸되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인류의 새 감염병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이크 라이언 WHO 긴급준비대응 사무차장은 13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열린 화상 언론브리핑에서 “코로나19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 바이러스가 우리 지역사회의 또 다른 ‘엔데믹(endemic·풍토병)’으로 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라이언 사무차장은 난치병인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겹핍증)를 유발하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를 예로 들어 “HIV도 인류에게 사라지지 않았고 우리는 이 바이러스를 받아들이게 됐다”며 “마찬가지로 언제 코로나19가 사라질지, 과연 사라지기는 할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를 좀더 냉정하고 현실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다만 그는 “HIV의 경우 효과적인 치료제는 개발된 상태”라고 부연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속속 이동제한 조치를 풀고 경제활동을 재개하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도 경계심을 드러냈다. 라이언 사무차장은 “만약 백신이 개발되지 않는다면 세계적으로 면역력이 충분히 생기기까지 몇 년이 걸릴 수 있다”며 “현재로선 개별국가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 차원에서 높은 수준의 통제가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경보 수위를 낮추기 위해서는 “어떠한 재발 사례에도 대응할 수 있는 매우 강력한 공중보건감시·의료 체계를 갖추는 등 바이러스에 대한 상당한 통제가 이뤄지는 단계에 도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브리핑에 동석한 마리아 반 케르크호브 WHO 신종질병팀장도 “우리 모두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사고방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와의 싸움이 장기전이 될 것이라는 관측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이날 스페인의 카를로스 3세 보건연구소와 국립통계원에 따르면, 실시간 국제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 기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스페인에서 전 인구의 단 5%만이 항체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인명 피해가 가장 극심한 국가 중 하나인 스페인에서조차 ‘집단면역’이 형성되지 못했다는 의미다.
집단면역이란 백신을 맞거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회복되는 과정에서 항체가 생겨 사회 구성원의 60% 이상이 면역력을 갖춘 상태다. 5% 항체보유율은 한 사회가 전염병에 집단면역을 갖게 되는 일이 결코 단기간에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치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