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사원한테까지 “기부해라”… 재난지원금 토해내는 금융권

입력 2020-05-14 16:41 수정 2020-05-14 18:38

금융권이 앞 다퉈 긴급재난지원금을 토해내고 있다. ‘자발적 기부’ 행렬에 동참한다는 명분이지만 결국 정부 눈치에 어쩌지 못하고 수령을 포기하는 모습이다. 일부 회사는 임원이나 부서장이 아닌 평사원에게까지 기부를 유도하기로 했지만 내부 반발을 고려할 때 쉽지 않아 보인다.

신한금융그룹은 13일 보도자료를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극복 및 지역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되기 위해 그룹 차원의 ‘긴급재난지원금 자발적 기부’에 동참한다”고 밝혔다.

우선 본부장급 이상 임원 250여명이 지원금 전액을 기부하고 부서장급 이하 직원은 자발적으로 동참할 수 있도록 기부 참여 문화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기부는 지원금을 아예 신청하지 않거나 근로복지공단 가상계좌에 입금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신한은행 등 각 계열사 임원이 모인 위기대응회의에서 금융사 임원이 고소득층에 해당하는 만큼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전했다.

각 계열사는 소속 임직원이 내놓은 재난지원금의 일정 비율(매칭 기부율)만큼 지역사랑상품권 등을 구매해 취약·소외계층에 전달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전체 기부액이 1억원, 매칭 기부율이 30%면 3000만원을 회사가 별도로 기부하겠다는 뜻이다.

다만 반발 가능성이 큰 만큼 일반 직원을 대상으로 기부를 적극 독려하기는 부담스럽다는 게 신한금융 측 설명이다. 기부 여부나 기부 액수를 일일이 확인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기부 참여 문화을 어떻게 조성할지에 대해 해당 부서에서 방법을 검토 중”이라며 “내부 캠페인을 벌이거나 사내 공지를 올리는 식으로 하기는 어려울 거 같다는 의견이 전달됐다”고 말했다.

신한금융은 기존 사내 기부운동 사례를 참고해 재난지원금 기부 참여율을 30%로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룹사 전체 직원 2만5000명 중 7500명이 재난지원금을 기부한 것으로 보겠다는 얘기다. 1인당 기부액은 4인 가족 기준 최대 금액인 100만원으로 잡았다.

우리금융그룹도 같은 날 보도자료를 내고 “본부장급 이상 그룹사 임원 약 200명이 긴급재난지원금 자발적 기부에 동참한다”고 밝혔다. 우리금융은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라며 “그룹 임원 회의에서 참석자 전원의 동의로 결정됐다”고 덧붙였다.

우리금융 역시 부서장급 이하 직원들도 재난지원금을 기부하도록 사내 분위기를 조성하기로 하고 방법을 검토 중이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조만간 재난지원금 수령 관련 사내 게시를 띄우면서 기부 방법을 함께 안내할 것”이라며 “재난지원금을 이미 신청한 직원은 가상계좌로 입금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이 담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권에서는 회사가 개개인에게 지급되는 재난지원금을 일괄적으로 포기하도록 하는 것은 월권행위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회사 직원들은 상대적으로 고소득자이긴 해도 40만~100만원이라는 금액의 가치가 수억원대 연봉을 받는 임원과 같을 수 없다고 말한다. “너도 나도 ‘기부한다’며 재난지원금 수령을 포기하게 하면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취지는 누가 살리느냐”는 볼멘소리도 있다.

회사마다 ‘재난지원금 기부’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는 했지만 임원들이 기부 사실을 인증하거나 회사가 기부 여부를 확인하지 않는다는 점은 맹점으로 꼽힌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임원들이 기부를 하기로 했지만 어디까지나 자발적으로 하는 것인 만큼 따로 확인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 잇따르는 ‘자발적 기부’ 선언이 실제로는 겉만 번드르르한 구호일 뿐이라는 시각도 있다.

홍보 자료를 내지는 않았지만 KB금융그룹과 하나금융그룹 등도 임원을 중심으로 재난지원금을 기부하기로 했다. KB금융 관계자는 “임원 회의에서 얘기가 나와서 ‘그러면 우리도 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직원들을 상대로 기부를 독려하는 사내 공지를 한 건 아니다”라고 전했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임원들끼리 의견을 주고받다가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